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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탈출…열대섬으로 '필리핀 바디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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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탈출…열대섬으로 '필리핀 바디안'

입력
2002.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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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의 기세가 날카롭다. 얼어버린 길을 걷는 마음은 자꾸 움츠러든다.겨울의 정점에서 여름의 나라를 그려본다. 푸른 바다와 산호 백사장, 그리고 하늘로 치솟은 코코넛 나무.

바다를 달려온 바람 속에는 훈훈한 습기가 녹아있다. 더 이상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따뜻함이 아니다.

필리핀 세부섬의 서남단에 있는 바디안섬과 보루네오섬의 말레이시아령 사바를 다녀왔다. 언제나처럼 그 곳에는 열대의 낭만이 가득하다.

일행은 작은 버스 3대를 나눠타고 세부섬의 내륙도로를 달렸다.

필리핀의 제2공항인 막탄공항에서 약 3시간 30분. 크고 안락한 버스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차가 길에 나서자마자 이유를 알았다.

세부 시내는 복잡했다. 오토바이 옆에 작은 객실을 붙인 트라이시클, 양철이나 알루미늄판을 망치로 두드려 만든 지프니가 도로를 가득 메웠다.

세부의 대중교통수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큰버스로 이동하다가는 시간만 잡아먹을 게 뻔했다. 작은 버스가 당연했다.

시내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었다. 필리핀의 농촌마을이 길을 따라 펼져져 있다. 발을 뻗고 눕기도 힘들 정도의 작은 집, 대충 옷을 걸친 아이들, 나무 그늘에 하릴없이 누워있는 촌로들….

우리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동남아에서 가장 서구적인 국가’, ‘이멜다의 구두’ 등으로 대표되던 필리핀에 대한 인식이 부서졌다.

400년 가까이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 상위 10%가 나라 재산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

이런 편견이 필리핀의 모습을 마음대로 재단하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모두가 표정이 밝다는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워낙 낙천적이다. 현실에 큰 불편함이 없으면 변화를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낙후된 공간에서 교육의 혜택도 거의 받지 않고 살지만 생활만족도는 언제나 세계에서1, 2위를 차지한다.

복잡한 상념 속에서 차가 멈췄다. 세부섬의 서남부 바디안(Badian). 공룡의 꼬리 같은 바디안 산록을 뒤로 하고 작은 선착장이 바다로 드리워져 있다.

눈 앞에 빤히 바디안섬이 보인다. 돌아올 때에야 깨달은 것이지만 이 선착장은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모터보트를 타고 섬에 가까이 다가가자 흥겨운 음악이 들린다. 섬의 리조트호텔 직원들이 모두 나와 있다.

노래를 부르면서 방문객에게 꽃다발을 걸어준다. 시원한 열대과일주스도 빠질 수 없다. 서서히 ‘뭔가 다른 곳’이란 것을 느낀다.

바디안섬은 작은 섬이다. 주인은 이방인이다. 독일인 회계사인 하리비그 슈워츠(67)씨가 여행 중에 섬을 보고 반했다.

1982년부터 재산을 쏟아부으며 개발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객실수가 10개도 안됐다. 별장 수준이었다.

이후 유럽 여행객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투자를 늘였고 지금은 50여 개의 객실에 수영장, 스파 등을 갖춘 종합리조트가 됐다.

섬의 ‘왕’인슈워츠씨는 1년 중 3분의 2는 독일에서, 나머지는 이 곳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부럽다.

필리핀에 있는 독일인의 리조트. 그래서인지 바디안 리조트의 분위기는 다국적이다. 날씨만 열대일 뿐 시설이나 서비스는 다른 나라의 것이다.

모든 건물은 일본풍이다. 일본 무사의 집처럼 처마 끝이 하늘을 향해 휘어졌고 풀을 엮어 지붕을 얹었다. 창문틀도 일본식이다.

식당은 본격적으로 다국적이다. 필리핀의 전통음식은 물론, 유럽식 스테이크와 해물요리, 일본식 우동까지 없는것이 없다.

일본에서 10년 여 일했다는 주방장은 김치까지 능숙하게 만들어낸다.

바디안섬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 모험과 휴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모험은 섬을 두른 바다에서 진행된다.

이 곳에서 18년을 일했다는 미국인 다이버 토니가 대장이다. 그의 지도로 모든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스노클링, 모터보트, 윈드서핑은 물론 약간의 교육을 받으면 스쿠버 다이빙까지 가능하다. 특히 바디안섬 인근에는 필리핀에서도 이름높은 다이빙 명소가 많다. 한 마디로 환상적이다.

물론 바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근 가와산폭포 여행이 깜짝 카드이다. 열대 원시림을 지나고 뗏목을 탄다.

천지를 진동하는 소리가 나고 하늘에서부터 내리꽂히는 듯한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뗏목에서 폭포가 만들어놓은 소(沼)로 바로 몸을 던질 수 있다. 머리 속까지 시원해진다.

리조트는 완벽한 휴식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야자나무 사이로 난 산책로, 해변어디에나 설치돼 있는 파라솔과 소파, 밀가루처럼 고운 모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먼지 한 톨 섞이지 않은 맑은 공기이다. 휴식의 절정은 해넘이로 완성된다. 바디안섬은 필리핀에서도 손꼽히는 일몰의 명소이다. 붉은 기운은 해가 완전히 넘어간 후에도 한참이나 남아있다.

멍하니 바라본다. 파라솔의 오렌지빛 조명이 하나 둘 켜지고 해변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는 필리핀 종업원들의 기타 소리가 들려올 때, 분명히 느낀다.

‘그래, 여름에 들어와 있어.’

열대의 바다. 작열하는 햇살을 가르며배가 나아간다. 배를 젓는 이는 삶의 고단함을 느낄까, 아니면 평온함에 젖었을까.

/바디안(필리핀)=글 권오현기자 koh@hk.co.kr

■세부·바디안 여행

세부는 필리핀 중부 비사얀제도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섬이다.

1521년 마젤란이 발견한 섬으로 ‘동양의 흑진주’로 불릴 만큼 자연 경관이 뛰어나다.

세부 시내 바로 앞의 막탄섬에 있는 막탄공항이 관문이다. 세부 시내와 막탄섬은 리조트의 천국. 거의 모든 해안이 리조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디안은 세부섬의 남서부 지역. 그 바로 앞에 놓인 섬이 바디안 섬이다.

세부에서 차를 타고 약 3시간 30분. 헬기로 30분 걸린다. 필리핀 전문여행사인 락소(02-569-0999) 등에서 바디안섬 등 세부의 여러 리조트 상품을 취급한다.

헬기는 6명 정원 편도 700달러 정도로 조금 부담스럽지만 시간을 아끼고 싶다면 투자해 볼 만하다. 막탄 공항에서 바디안까지 헬기로가고 돌아올 때 차를 이용한다면 특이한 비행 경험은 물론 필리핀 서민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다.

필리핀은 외교관계가 없는 나라의 국민을 제외하고 비자 없이(21일 체류) 입국할수 있다.

미화 3,000달러 이상을 소지했다면 관세구역의 중앙은행에 액수를 신고해야 한다. 화폐는 페소.

1페소는 약 26원이다. 리조트 등에서는 미국 달러를 받지만 일반 상점에서는 페소화를 내야 한다. 필리핀의기후는 11월과 2월 사이가 가장 좋다.

기온은 섭씨 22도에서 28도 사이를 유지한다. 필리핀항공(02-774-0088)에서 주 4회(수, 목,토, 일요일) 인천국제공항과 세부의 막탄공항을 왕복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4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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