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과 지방선거 등 선거의 해를 맞아 새해 벽두부터 정계개편 얘기가 무성하다.개념조차가 애매모호하고 실현성 여부도 검증되지않는 백화쟁명식 정계개편론의 가닥을 잡아 보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정계개편론은 크게 네 가지 부류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아직도 정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3김씨가 연대해 정치판을 근본적으로 바꿔 버리는 경우다.
실현만 된다면 가장 파괴력이 있다. 하지만 3김씨의 역할에 부정적인 그룹으로부터의 역풍도 감내해야 한다.
둘째는 3김씨가 직접 나서지 않고 역할 대리인을 세워 연대를 모색하는 경우다.
3김씨 영향력의 결집이다. 민주당의 김 대통령 측근인사나 한나라당의 상도동계 출신 인사들이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김종필 총재는 내각제를 고리로 본인이 직접 나서거나 아니면 자민련의 간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
민국당 김윤환 대표 등 구 정치인이 3자를 아우르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셋째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개혁성향 의원 등 국민의 정치적 변화 욕구를 수용코자 하는 그룹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다.
정치 리더나 책사(策士) 들이 특정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추진하는 게 아니고 자연발생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여야 중진의원등이 4년 중임제 개헌을 고리로 변화를 지향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넷째는 여야의 경선과정에서 결과에 승복하지 않거나 경선에서 탈락한 주자들이 대선 출마를 위해 신당을 만드는 경우다.
1997년 대선 때 이인제 후보의 국민신당 창당이 선례가 된다.
다음으로 네 가지 경우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점검해 보자.
첫번째 경우는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김 대통령이 신년 인사회에서 "일부에서 말하는 정당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3김 연대나 신당 창당 등을 통한 정계개편에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여기에다가 김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연대를 모색하기에는 감정의 골이 아직은 너무 깊다는게 정가의 정설이다.
3김씨 이후를 노리는 차세대 지도자들 역시 3김씨의 재 등장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두번째 경우의 실현 가능성은 정국상황에 따라 가변적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정가 일각에서는 개혁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민추협 세력(동교동과 상도동계)이 다시 손 잡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으나 이를 위해서는 두 김씨(김대중ㆍ김영삼) 못지 않는 강력한 리더십이 있어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김윤환 대표의 거중조정은 영남 후보옹립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한계가 있다.
그리고 3김씨가 대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굳이 정계개편을 추진 하지 않더라도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세번째의 경우도 성사되자면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 변화와 쇄신을 주장하는 의원 대부분이 초ㆍ재선의원들로 추진력에 한계가 있다.
4년 중임제 개헌의 기치를 건 민주당의 정대철 김근태 정동영 의원과 한나라당의 이부영 김덕룡 의원 등 5인 중진 모두 당내에서 세(勢)가 약한 비주류들이다.
설사 이들이 기존정치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으로 신당 창당을 도모한다 해도 의원 몇 명이 호응할지 미지수다.
상대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경우가 네번째 일것이다.
꼭 올 대선이 아니더라도 일정 지분을 확보해 차기를 노리거나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확고히 하려는 야심가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방법이 결과에 승복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이처럼 어느 경우나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음에도 정계개편 얘기가 끊이지 않은 것은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과 변화에 대한 욕구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는 정치판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60% 이상임을 말해 주고 있다.
정치권이 정신을 차리지 않는 한 정계개편설은 실현성 여부와 관계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이병규 정치부장
veroic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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