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들은 외부인에게 자신의 집을 공개하는 것을 꺼린다. 특히 방문객이 무슬림이 아닌 경우 더더욱 그렇다. 서로 어울리기 좋아하고 관용과 친절의 가치를 생활화하고 있지만, 나이나 재산, 부인 등 개인의 신상에 관한 것은 서양보다 더 철저히 화제로 올리는 것을 피한다.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얼마든지 동등한친구가 될 수 있는 문화, 여자를 가급적 감추려는 문화에서 비롯된 관습이다. 이들의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한 아랍인의 주택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여러 차례의 요청 끝에 어렵게 받아낸 허락이었지만 자신 외 집안의 어떤 사람하고 이야기를 나눠서도 안되고, 여자들이 있는 본관에는 들어서지 않는다는 조건이 달린 채였다.≫
■27년 공직생활 아다부이씨 가정 방문記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중ㆍ상류층이 살고 있는 주택들은 석유로 얻은 부의 풍요로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살고 있는 두바이 시내의 알_맘제르 지역은 다른 주택가와는 달리 잘 포장된 도로에 하얀 색으로 깨끗하게 단장된 고급 2층 주택들이 길 양쪽에 질서 정연하게 줄 지어 서 있었다. 길 한쪽에 세계 최고급 승용차들이 빽빽이 주차해 있고 지붕에는 위성방송 수신용 접시형 안테나가 촘촘했다.
이곳에서 UAE 교육부에서 27년간 재직하면서 두바이의 가장 번화한 지역 중 하나인 데이라(Deira)의 지역교육 총책임자인 압둘라흐만 알다부이(44)씨의 집을 방문했다. 정문을 들어서자 3~4개 동(棟)은 됨직한 여러 채의 2층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알다부이씨의 안내에 따라 먼저 손님을 맞는‘게스트룸’으로 들어섰다. 남자용, 여자용 방이 따로 있다고 했으나 여자용 방은 취재가 허락되지 않았다. 사방으로 코란을 비롯, 역사ㆍ종교 서적들이 서가에 가득 꽂혀있고, 한 쪽에는 TV와 간단한 찻잔, 식기 등이 준비돼 있다.
손님 음식을 차리는 조그만 부엌을 지나면 옆 방이 하인들이 사는 곳이다.2층 침대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 두개의 방에 기거하는 이 집의 하인은 여자 6명, 남자 7명 등 모두 13명. 모두 동남아와 서남아 출신이다.
사랑방,하인용 방이 있는 건물과 가족들이 있는 본관 건물로 가는 길 중간에는 외부인의 접근을 막기 위한 대형 칸막이가 둘러쳐 있다. 본관 건물을 한사코 공개하기를 꺼리던 알다부이씨는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하고 외부를 안내했다.
양쪽이 똑 같은 대칭 모양으로 된 2층 건물이었다. 내부로 들어가는문이 똑 같은 형태로 두개가 나 있고, 2층 창문, 지붕 모양까지 똑같다. “아내가 두 명인데 코란의 율법대로 모두 평등하게대하기 위해 건물 모양까지 똑같이 만들었다” 는 설명이다.
한쪽 문은 첫째 부인이, 다른 문은 둘째 부인이 각각 출입하는 곳이다. 그는 “지금은서방의 영향을 받아 이 동네의 95% 이상이 아내를 한 사람만 두고 있지만, 아내가 둘 이상인 경우는 대부분 집모양이 이런 형태”라고 말했다.
첫 부인에게서 3명, 둘째 부인에게서 7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그는 “BMW, 랜드 크루저, 벤츠등 승용차는 5대이고 재산은 대략 150만 달러 정도 될 것” 이라고 추정할 뿐 정확한 규모는 알지 못했다.
알다부이씨가누리는 것은 비단 돈 만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가 UAE 최초의 이슬람 학자였고, 자신은 교육부에서 수 십년을 봉직한 인연으로 국가로부터 젊은이들의 결혼을 성혼시킬 수 있는 권리를 부여 받았다.
젊은 남녀가 그의 허락을 받기만 하면 법원에 가서 부부로서의 ‘절차’ 를 밟지 않고도 합법적인 부부가될 수 있다. 알다부이씨가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젊은이는 매달 20쌍 정도. 지금까지 300쌍 이상이 그의 손을 거쳐 부부가 됐다.
물론 아랍인만이 그에게 이런 부탁을 할 수 있다. 결혼을 성사만 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결혼해서는 안될 것 같으면 양쪽 집안을 찾아 다니며 성혼을 반대하는 설득도 벌인다. 남자가 술주정뱅이거나 마약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반대하는 주된 이유이다.
그는 “내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겠다고 고집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알다부이씨와 같은 예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 중 상당수 아랍 토착민들은 이같이 국가로부터 일정 부분의 ‘공권력’ 을 부여 받아 지역사회의 ‘어른’ 역할을 하고 있다.
맞은편에 살고 있는 살라 살렘 알키와니(35)의 집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나무에 관심이 많다” 는 그는 한 쪽에 널찍한 정원을 만들어 세계 각국의 희귀종 식물과 나무를 수집하고 있다. 스페인, 태국, 아프리카 등 원산지가 30개국이 넘고, 여기에 들어간 돈은 자신도 잘 모른다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 정보통신 분야를 공부한 그는 지금 미국의 한 첨단장비업체 회장직을 맡으면서 두바이에서는 인도_UAE상공회의소 의장, 시청 자재담당 부장 등 다양한 명함을 갖고 있다. 부인은 아직 한 사람 뿐이지만 돈을 더 벌면 한 사람 더 맞이하고 싶다는 그는“9ㆍ11테러 때문에 뉴욕 증시가 폭락해 주식에서 많은 손해를 봤다” 며 웃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아랍인의 결혼생활
중동지역의 일부다처제 관습에는 나름의 엄격한 원칙과 규율이 있다. 서방에 표면적으로 알려진 것과 는 다르다.‘성차별’‘전근대적인 사고방식’ 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으나 코란의 율법을 따르는 결혼문화는 서방의 잣대로 재단하고 규정할 수 없는 이슬람 문화의 무게가 실려 있다.
아랍남성은 코란에 따라 부인을 최대 4명까지 둘 수 있다. 그러나 둘 이상의 아내를 얻으려면 이에 대한 합당한 이유와 명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코란은 기본적으로 모든 부인을 평등하게 대우할 것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같이 살고 있는 부인의 허락과 설득이 우선되지 않으면 남편은 임의로 새부인을 들일 수 없다.
부인도 남편이 새 부인을 맞이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반대하지 않고 이렇게 해서 가족이 된 남편의 새 부인에게는 질투의 감정을 품지 않는다.
살라살렘 알키와니(35)씨는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성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옆집, 혹은 아는 집의 아내가 남편을 잃었을 경우 합법적으로 새아내를 맞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망인을 맞아들이는 것은 남자가 여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전통을 따른 것이지만, 지금은 정부가 이를 더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미망인이나, 아버지를 잃어 생계수단을 잃은 여성에게 월 2,000달러의 생계비를 보조해야 하는데, 새 남편을 맞이할 경우 정부는 이런 재정부담에서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부인으로 들어오면 첫번째, 두 번째에 관계없이 모든 부인들은 철저히 평등하게 대우 받는다. 돈에서부터 육아, 심지어는잠자리 횟수까지 균등하게 대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부인은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할 수 있다.
물론 일정기간 별거를 먼저 하고 양쪽 집안의 어른인 ‘현자(賢者)’ 가 최대한 설득하지만 일단 이혼이 결정되면 남편은 육아비 등 엄청난위자료 때문에 ‘쪽박’ 신세를 면치 못한다.
문제는 남성이 납득할만한 이유없이 단순히 성적욕망에 빠져 젊은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들이려 할 경우이다. 알키와니씨는 “집안 어른이 남자를 설득해 포기하도록 하는것이 대부분이나, 남편이 고집을 꺾지 않을 경우 결국은 아내가 파국을 막기 위해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고 말했다.
막무가내로 막을 경우 코란에서 가장 큰 죄로 여기는 간음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곳 결혼 풍습의 다른 골칫거리는 외국계와의 결혼을 극히 꺼리는 현지 아랍인들의 근친 결혼이다. 이 때문에 집안마다 외부에 알리기를 꺼리는 ‘문제 자녀’ 가 한 둘씩은 있기 마련이라는 게 외국계 주민들의 설명이다.
알키와니씨는“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는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아 불가피하게 둘 이상 아내를 얻어야 할 경우가 있다” 며 “그러나 최근에는 젊은 남성들이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아 한 명의 아내로 만족하고 사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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