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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토지' 3년만에 재출간 "문학작품은 없고 상품만 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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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토지' 3년만에 재출간 "문학작품은 없고 상품만 득세"

입력
200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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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과 작가의 차이는 무엇이며 기술자와 작가는 어떻게 다른 것인가. 차이가 없다면 결국 문학은 죽어갈 수밖에 없다.”소설가 박경리(76)씨가 이번 주 나남출판에서 전 21권으로 새롭게 나오는 대하소설 ‘토지’ 2002년 판 서문에서 “의미를 상실한” 오늘의 문학에 대한 절절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그는 여기서 “나는 왜 작가가 되었을까”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까지 던진다.

“출판계약이 끝나면서 3년간 책(‘토지’)을 내지 않고 절판상태를 애써 외면했다”고 말한 그는 “구세대에 속하고 편협한 나로서는 문학작품이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생산되고 소비되는 오늘의 추세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며 최근 상업주의에 휘둘리는 문학의 상황을 질타했다.

“의미를 상실한 문학, 맹목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삶,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책이 다시 나가게 되니 마음은 석연찮다. 자기연민이랄까, 자조적이며 투항한 패잔병 같은 비애를 느낀다. 나는 왜 작가가 되었을까.”

박씨는 그러면서도 신판을 낸 이유를 지난해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 복원된 ‘최참판(소설의 주인공)댁’에서 열린 ‘토지문학제’에 참가했을 때 지리산의 한(恨)을 온몸으로 느낀 일화로 소개했다.

“(행사장 연설 도중)예상치 못한 일이 내 안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한 번 찾아와 본 적이 없는 악양면 평사리, 이곳에 ‘토지’의 기둥을 세운 것은 무슨 까닭인가… 과연 박 아무개의 의도라 할 수 있겠는지, 아마도 그는 누군가의 도구가 아니었을까, 전신이 떨렸다. 30여 년이 지난 뒤에 작품의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토지’를 실감했다. 서러움이었다.”

박씨는 “어디 지리산뿐일까마는 산짐승들이 숨어서 쉬어볼 만한 곳도 마땅치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식물, 떠나버린 생명들, 바위를 타고 흐르던 생명수는 썩어가고 있다 한다. 도시 인간들이 이룩한 것이 무엇일까?”라며 “삶의 의미는 멀고도 멀어 너무나 아득하다”고 서문을 맺었다. 2002년 판 ‘토지’는 내용은 그대로 두고 어려운 방언은 괄호 안에 뜻을 병기하고 활자와 행간을 읽기 쉽도록 바꿨으며 한 손에 들어오는 아담한 크기의 양장본으로 꾸몄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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