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김상유(76)씨의 그림은 이름 없는 장인이 그린 옛 민화나 탈속의 세계가 느껴지는 문인화를 떠올리게 한다.청량한 목어(木魚) 소리가 들릴 듯한 산사, 혹은 적요한 산간의 정자, 거기에 도사 같은 사람이 홀로 앉아 묵상에 빠진 모습. 이것이 그의 그림이다.
엄정한 조형미나 섬세한 색채는 애당초 그의 관심 밖의 일이다.
김상유씨의 전작(全作)전이 17일~2월 15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02-734-6111)에서 열린다. 1970년대부터 99년까지 그린 유화 100여 점과 60년대에 만든 동판화와 목판화 20여 점을 통해 탈속과 달관의 세계를 엿보는 전시회다.
작가는 녹내장으로 인한 시력장애로 99년 이후에는 거의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92년 유화작품 ‘유하정(柳夏亭)’은 그가 그림과 세상을 어떻게 대하는 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새 3마리가 숨어 있는 커다란 버드나무, 그 밑 시원한 그늘에 자리잡은 누각, 그리고 예의 결가부좌를 튼 명상자의 모습.
눈을 감은 등장인물은 속세에서 벗어나려는 작가 자신이 아닐까.
평남 안주 출생인 김씨는 연세대 철학과를 중퇴한 후 30대 중반이 돼서야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70년 ‘막혀버린 출구’라는 동판화로 서울에서 열린 제1회 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탄 뒤, 8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유화작업을 시작했다.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 판화는 사는 사람이 없어 붓을 잡았다”는 것이 작가의 고백이다.
이후 경북 안동과 봉화, 강원양양 등을 돌아다니며 고(古)건축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90년 제2회 이중섭미술상 수상. 그는 “현판이나 난간, 마루가 있는 정자나 사랑방은 단아하면서도 웅장한 기품을 느끼게 해준다”며 “빨리 시력을 회복해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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