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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산책] 월드컵의 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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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산책] 월드컵의 태동

입력
2002.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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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축구연맹(FIFA)이 창설된 해는 1904년이다. 창설멤버는 프랑스 벨기에 스페인 등 유럽 7개국, 초대회장은 프랑스 체육연맹 회장 로베르 게랑이었다. 이듬해 FIFA 파리총회는 세계선수권 개최를 결정했지만 무산됐다. 축구가 세계에 보급된 지 얼마 안돼 국제규칙이 통일돼 있지 않았고 교통수단이 미흡했던 환경 때문이었다.1차세계대전 이후 주춤하던 국제대회 논의는 1921년 프랑스의 줄 리메가 3대 FIFA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화했다. 이때 유럽과 남미에서는 축구의 프로화가 시작됐는데 줄 리메는 “올림픽 축구는 세계선수권과 관계가 멀다. 아마와 프로의 관계 없이 세계 최고의 대회를 만들자”고 각국을 설득했다.

마침내 FIFA는 1926년 제1회 월드컵 개최를 결정했고 27년 총회에서 스타디움 신설과 선수단 비용부담을 제의한 우루과이가 초대 개최국의 영예를 안았다. 종주국 잉글랜드는 자국이 세계 최강이라 월드컵은 불필요하다며 FIFA에서 탈퇴했고, 다른 나라들도 남미여행은 모험이라는 생각에 참가를 망설였다. 그러나 줄 리메 회장의 설득으로 프랑스 루마니아 벨기에 유고슬라비아 등 유럽 4개국이 참가를 결정하게 됐다. 스포츠 단일종목 최초의 세계선수권인 월드컵은 처음 논의된 지 26년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월드컵의 창설이 가능했던 배경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된 지 100년도 안돼 각국에서 국민적 스포츠로 자리잡은, 축구의 보편성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국제정세도 작용했다. 당시 프랑스의 쥬나르지는 “프랑스 팀이 남미를 여행하는 것은 단순히 스포츠 때문만은 아니고, 정치나 각국과의 우호를 다지는 데 있다”며 월드컵의 의미를 설파했다.

1차 세계대전 후 불안과 긴장이 고조돼 있던 국제사회는 바로 스포츠를 토대로 한 일종의 ‘국제사교모임’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이다. 월드컵이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인간의 전쟁본성을 ‘축구를 통해 대리 만족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축구야말로 계급이나 인종의 구분 없이 세계인 모두를 한 가족처럼 단합시켜 줄 것”이라는 줄 리메 회장의 말은 월드컵을 통해 실현된 것이다.

유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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