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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조폭영화 신드롬' 정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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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조폭영화 신드롬' 정신분석

입력
2002.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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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조폭이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했다.뇌물사건과 관련되었다 해서 사회면에 오르내리고, 극장가를 사로잡은 영화들이 줄줄이 조폭영화라 해서 문화면의 화제가 되었다.

할리우드영화를 누른 늠름한 국산영화의 주인공들이 조직폭력배였다. 대중을 그토록 웃겼다 울렸다 하면서 한국영화의 부흥을 가져온 조폭의 매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 매력은 폭력에 있다고 말하는 경우를 보았다.

인간은 폭력과 파괴의 충동이 있는데, 평소에 억압되고 있던 그 충동이 그런 영화를 통해서 배출되는 기회를 얻는다는 것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이 마음대로 부수고 때리는 것을 보면서 관객이 대리만족을 체험한다는 이런 설명은 프로이트에 근거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불충분한 정신분석이다. 물리적 폭력만을 생각한다면 굳이 관객은 조폭영화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할리우드의 액션영화나 홍콩의무협영화가 훨씬 더 폭력적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차라리 조직을 강조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조직적이므로 조폭이라 불리는 폭력배들은 철저한 상명하복이 불문율인 특이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엄격한 조직사회가 매력적인 것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어떤 냉혹한 논리가 관철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조직의 논리는 보스의 카리스마와 이어져 신비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조폭영화의 정신분석은 아마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에릭 프롬에 따르면, 나치즘이 독일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국민이 자발적으로 자유로부터 도피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해방된 노예가 다시 예전의 예속된 삶을 그리워한다는 심리와 같다. 때로 자율이 힘겹다는 것을 말해주는사례들이다.

분명 예속이 자유보다, 타율이 자율보다 편할 때가 있다. 어떤 결정을 위한 고심이나 심리적 갈등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조폭의 세계는 범법적 일탈과 자유의 세계인 듯하지만, 거기에서 주체는 세속의 법보다 강력한 법칙의 노예다.

그곳은 행위자에게 판단을 원하지 않고,때문에 본능의 세계에 가깝다. 여기서 판단하는 것은 보스만이 지닌 특권이다.

그 본능의 세계는 때로 동물의 왕국처럼 보이지만, 또한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에 책임지지 않아도 좋은 유아의 세계이기도 하다.

여기서 책임은 개인을 넘어 선 차원에 있다. 대중이 조폭영화에서 구하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심리적 평화를 약속하는 듯한 타성, 자유롭다는 착각을 주는 타성의 유혹이다.

그런 유혹에 약한 것은 특히 한국의 남성들이다. 집안에서는 무조건 아내에 기대는 것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첫걸음이라 생각하는 것이 우리네 가장들이다.

집안에서 응석을 부리다 보니 여차하면 집 밖에서도 아내가 해결사이기를 바라는 것이 한국의 남편들 아닌가.

그런 남편을 데리고 사는 아줌마들의 마음에는 점점 보스기질이 쌓일 것이고. '조폭 마누라'의 성공 이유는 이런 심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집안에서 한국남성은 근본적으로 조폭적이다. 책임으로부터 면제된 순진무구한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것이다.

조폭영화가 희극적일 수 있는 이유는 그런 유아심리의 활용가능성에 있을 것이다.

다시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조폭영화가 연출하는 진정한 사건은 폭력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건은 자율적 판단을 금지하는 조직의 논리에 구멍이 날때 일어난다.

이 사건을 일으키는 주인공은 두 죽음 사이에 놓인다. 하나는 타인에게 가하는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감당해야하는 죽음이다.

자신의 죽음을 감당할 때 주인공은 다시 두 종류의 죽음을 겪는다. 본능적 인간으로서 죽고 다시 반성적 인간으로서 죽는다.

주인공은 자율적 개인으로 태어나자마자 다시 죽어야 하는것이다. 갱영화가 비극적일 수 있는 이유는 이 죽음의 비장미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조폭영화가 점점 코미디물이 되어 가는 이유는 뭘까?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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