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헛된 희망을 주지나 말지….” 지난해 11월로 예정됐던 4차 남북이산가족상봉때 방북자 명단에 포함돼 북에 두고 온 막내아들 이병립(李炳笠ㆍ64)씨를 만날 꿈에 부풀었던 권지은(權志殷·88·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할머니는 당시를 떠올리며 눈물부터 훔쳤다.권 할머니는 “상봉 무산이 못내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아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권 할머니가 막내아들 이씨와헤어진 것은 1947년 겨울. 평남 강서군에 살던 할머니는 그해 여름 먼저 월남한 남편을 찾아 여섯살배기 막내 아들을 친척집에 맡겨 두고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데리고 내려왔다. “다시 올라 올 수 있을 줄 알았지. 힘에 부쳐 막내는 두고 왔는 데, 아직도 피눈물이 나요.”
권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국군이 압록강까지 반격해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고 막내를 찾아가려 했으나 ‘곧 통일이 될텐데 그때 가자’며 만류했던 남편의 이야기를 믿고 기다리다 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할머니는 지난해 북으로 가져가려고싸놓은 약(藥)과 내복, 다섯돈짜리 쌍가락지, 달러 등이 든 짐꾸러미를 풀지도 못하고 지금껏 아랫목에 신주단지처럼 모셔 두고 있다. 특히 내복은수십년간 날씨가 추워질 때마다 막내를 생각하며 사 모은 것이어서 일부는 색이 바랬다.
“여기서 등따숩게 지낼 때도 애미없이 서럽게 살 병립이 생각에 마음이 편치않았거든. 그래서 사모은 것들이여.”
둘째아들 이병조(李炳祚ㆍ64)씨는 “요즘도 어머니께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저 짐꾸러미들을 어루만지신다”며“막내를 봐야 된다는 오기 때문인지 지난해보다는 건강을 많이 회복하셔서 다행”이라고 귀띔했다.
권 할머니는 “우리 병립이 보고 죽어야 하거든. 만나서 ‘애미가 잘못했다’는 말을 전해줘야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되뇌면서 먼산을 바라봤다.
김기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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