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시(詩)처럼 ‘꿈엔들 잊힐리’없는 한해였습니다.” 지난해 2월 3차 이산가족상봉 때 51년만에 동생과 재회했던 ‘향수’의 시인 정지용(鄭芝溶)의 맏아들 구관(求寬ㆍ74ㆍ경기 의정부시 녹양동)씨.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우황청심환을 찾아야 할 만큼’ 가슴이 벅차 오른다.정씨는 “1950년 7월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며 집을 나간 동생 구인(당시 배재중 2년)이가일흔을 바라보는 늙은이로 돌아왔는 데도 마실갔다 방금 돌아온 아이를 맞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아버지 정지용 시인의 납북과가족의 이산, 납북시인 가족으로 겪어야 했던 고초 등 가족사의 비극을 젖은 눈으로 훑던 정씨는 “하지만 남북화해분위기와 더불어 비극의 장이 하나 둘씩 걷히는 것 같다”며 눈물을 거뒀다.
정지용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되는 올해, 정씨는 두번째 소원을 빌고 있다. 오는 5월 충북 옥천군에서 열릴 ‘지용제(芝溶際)’에 북에 있는 동생 구인씨와 함께 참석하는 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어요. 올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함께 ‘지용제’에 참석하고, 정기적으로 서로만날 수 있는 날도 올 것 같아요.”정씨는 장밋빛 희망을 부풀리고 있다.
정씨는 “아버지의 시가 남과 북에서 동시에 사랑받는 것은 이데올로기를 떠난 민족적 서정성에 있듯이, 이산가족 문제 해결도 이념을 떠나 민족적인 동질성을 찾는 노력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씨가 반세기만의 상봉의 기쁨을 되새기고 있지만, 대다수 이산가족들은 ‘그날’이 안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실의에 잠겨 있다. 더구나 지난해 11월로예정됐던 4차 이산가족상봉이 북한의 일방적인 취소로 무산된 후 절망은 더 깊어졌다.
'망향자실' 실향민 아들
지난해 10월 절망감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에서 뛰어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규채(朴圭彩ㆍ84ㆍ부산 남구 대연5동)씨 가족들은 아직도 눈물샘이 마르지 않는다. 박씨는 광복군 출신으로 건국훈장까지 받았던 국가유공자. 개성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형과 함께 월남한 박씨는 이산가족상봉 때마다 방북신청을 했으나 번번이 좌절되자 이를 비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평생 자신의 아픔을 달래주던 부인마저 4년전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삶에 대한 미련조차 이어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를 모시고 살았던 둘째 아들 영호(永鎬ㆍ48)씨는 “아버지는 늘 북에 있는 가족들을 만날 날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견뎌 내셨다”며 “북의 가족들을 만나셨다면 아직도 또 다른 희망을 꿈꾸며 건강하게 생존해 계셨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대부분의 이산가족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고령자들입니다. 이런 슬픔과 고통이 우리가족의 일로 끝날 수 있도록 남북 양측이 가슴을 맞대야 합니다.”영호씨는빛 바랜 아버지와 북의 가족 사진을 부여잡고 목놓아 울부짖었다.
부산=김창배기자
kimcb@hk.co.kr
의정부=김기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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