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현주요즘 하와산에는 고사리가 한창이다. 흰 솜털로 감싸인 고사리의 어린잎은 꼭 아기 주먹 같다. 산나물 중 제일 먼저 나는 것은 쑥부쟁이와 두릅이다. 이어 원추리, 취나물, 고비 등이 차례로 난다. 며칠 있으면 참나물, 취나물, 모시대, 잔대 등도 날 것이다.
상구는 고사리를 한 짐 짊어지고 산 중턱에 있는 보리암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얼마나 줄까, 할아버지 고기 좀 사드리게 많이 달라고 해볼까?’
그러나 상구는 고개를 젓고 말았다. 사주는 것만도 고마운데 무슨 소리냐고 고함이나 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지난번에도 산에 지천으로 널린 것을 뜯어다 팔아먹는다고 얼마나 잔소리를 하던가.
“산나물 사려! 산나물 사려!”
상구는 보리암 반대편 기슭에 대고 소리쳤다. 암자 안쪽에 대고 소리치면 시끄럽다고 야단치고, 가만히 서 있으면 꿀 먹은 벙어리냐고 야단쳐서 궁리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이다.
“어디 풀어봐.”
언제 나왔는지 뒤통수 쪽에서 주지 스님 말소리가 들렸다. 상구는 두말 않고 보따리를 풀었다.
“또 고사리냐!”
오늘도 역시 주지 스님은 버럭, 소리부터 질렀다.
“내가 백이 숙제(중국 은나라의 왕족. 주나라 무왕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무왕의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을 수 없다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죽음)인 줄 아는 모양이지, 만날 고사리만 가져오게. 너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서 왜 죽었는지 알아? 고사리 먹고 암에 걸려 죽은 거야. 고사리 많이 먹으면 암에 걸린다잖아.”
“우려내면 괜찮대요.”
상구는 나물 하다 만난 아주머니에게 들은 소리를 중얼거렸다.
“더덕이나 좀 캐 오지 않고. 너 더덕으로 곡차 담그면 향이 얼마나 좋은 줄 알아?”
“스님도 술 마셔요?”
“술이 아니라 곡차라니까.”
‘엉터리 땡중!’
상구는 아랫입술을 비죽거렸다.
주지 스님의 더덕 타령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두릅을 내놓아도 더덕, 취나물을 내놓아도 더덕, 어느 것을 내놓아도 더덕 타령이다.
그러나 더덕 구하기가 산삼 구하기만큼 어렵다는 것은 주지스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그러는 모양이었다.
“옛다, 받아라. 다음엔 꼭 더덕을 캐 오너라.”
주지스님이 고의춤에서 돈을 꺼내 내밀었다.
“네.”
상구는 대답과 함께 주지스님이 내민 돈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보나마나 오천 원 짜리 한 장일 것이다.
“다음부턴 거스름돈 좀 갖고 다녀라.”
주지 스님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상구는 달음질쳐 산을 내려왔다.
며칠 사이에 할아버지 병세가 더욱 심해졌다. 한번 기침을 시작하면 쉬 멈추지 않았고 가래도 심했다. 할아버지 병은 결핵이었다.
“젊었을 때는 결핵균에 감염되었더라도 잘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다 늙어 허약해지면 나타난답니다.”
보건소 소장이 약을 건네주며 할아버지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상구는 보건소 소장이 시킨 대로 할아버지가 내놓은 휴지를 태우고 수건은 삶았다. 함부로 아무데나 버리거나 도랑물에 빨았다가는 큰일 난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이다. 삶은 수건은 방안에 매달아 놓은 빨랫줄에 널었다.
“장기판 가져오너라.”
벽에 기대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턱으로 방안 한 구석을 가리켰다.
“오늘은 그냥 쉬세요.”
“가져와.”
아버지가 죽고,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상구는 학교를 그만두었다. 5학년 2학기 때였다. 그때부터 할아버지는 상구에게 장기를 가르쳤다. 할아버지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상구는 장기판 위에 올려져 있는 돌부처를 내려놓았다. 산에 묻혀 있는 것을 나물하다 발견하고 캐 온 것이었다.
“오늘은 차를 떼 주마.”
할아버지는 차를 떼어 방바닥에 내려놓았다. 처음에는 차와 포와 상을 한꺼번에 떼 주었다. 그러다 차와 포를 떼 주고, 마침내 차만 떼 주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요즘도 주지 스님이 보리암으로 오라고 하시니?”
할아버지가 졸을 밀어내며 물었다.
“이젠 그런 말 안 해요.”
병을 옮겨 놓으며 상구가 대답했다.
“보리암으로 들어가는 게 너한테는 좋을 텐데.”
할아버지가 다시졸로 길을 잡으며중얼거렸다. 상구는 그졸을 포로 잡았다.
보리암 주지스님이 상구를 상좌(제자)로 삼고 싶어한다는 것은 할아버지도 알고 있었다. 상좌로 오기만 하면 밥도 먹여주고 학교도 보내준다고 했다.
그러나 상구가 '할아버지는 어떡하고요!' 하고 소리를 지른 뒤부터는 상좌란 말조차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대신 잔소리와 타박이 더 심해졌다. 특히 산나물을 해 가는 날이면 어찌나 잔소리를 하는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산나물 할 때는 발 밑을 잘 보고 어린순을 밟지 않도록 해라, 뿌리째 뽑지 않도록 해라, 산나물은 손으로 뜯어야 뿌리를 다치지 않는다, 한 번 딴 순에서 나온 싹은 다시 따지 말아라, 특히 두릅은 다시 올라 온 순을 따면 죽는다는 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언제인가 모르고 독초를 따 갔을 때이다.
"네가 날 죽일 셈인가 보구나!"
주지스님은 독초를 상구 코에 바짝 들이댔다.
"냄새 좀 맡아봐라, 이런 걸 너 같으면 먹을 수 있겠냐?"
아닌 게 아니라 주지스님이 들이민 것에서는 지독한 냄새가 났다. 그 때 상구는 나물과 독초를 구별하는 첫 번째 방법이 바로 냄새 맡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나물은 향긋한 냄새가 나지만 독초는 역겨운 냄새가 났다.
"냄새로 잘 모르겠으면 곤충들이 먹은 흔적이 있나 살펴봐. 곤충이 먹을 수 있는 건 사람도 먹을 수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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