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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드센 팔자, 고운 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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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드센 팔자, 고운 팔자

입력
2002.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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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방송과 잡지에서 재미있는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말띠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속설에 대해 '말띠 여자'로서 한마디 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인터뷰는 안 했지만, 2002년 임오년을 맞으면서 그 속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말띠 여자가 어떻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너 말띠야? 말괄량이겠네" 란 말을 듣는 정도였다.

60년대에 나온 '말띠 여대생'이란 영화도 말괄량이 여자를 그린 영화였다.

말띠 여자의 팔자가 드세다는 것은 일본의 옛 미신이고, 특히 백말 해에 태어난 여자들은 결혼을 포기할 정도였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태어난 우리 말띠 딸들이 팔자 걱정을 하지 않은 것은 남의 속설을 끌어다가 아이들 팔자를 말하지 않는 점잖은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의 어른들은 왜 이리 경박스러운가. 말띠 딸을 낳을까 봐 2002년에 아예 아기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니 어이가 없다.

실제로 작년 하반기부터 산부인과를 찾는 임산부 숫자가 줄었고, 금년 내내 그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말의 해이던 지난 90년에는 신생아 성비(性比)가 여아 100명당 남아 116명으로 그 전후의 113명선에 비해 현저하게 남자아기가 많았는데, 태아 성 감별이 가능했던 시기이니 짐작이 간다.

오늘의 젊은 부모들은 정말로 말띠 여자의 팔자가 세다고 생각할까.

남자를 압도하는 여자를 동경하는 '강한 여자' 신드롬이 일고 있는 이 마당에 말띠 딸을 기피하는 풍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강한 여자'이긴 하되 팔자는 고와야 한다는 생각일까. 센 팔자와 좋은 팔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말띠 여자의 팔자가 특별히 드세다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단지 그들은 내 딸에게 '약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말띠 해의 출산을 기피할 것이다.

내 딸의 눈이 작거나 아이큐가 낮다는 등의 약점은 성형수술이나 과외공부로 보완해 줄 수 있지만, 띠는 고칠 수가 없으니 말띠 해엔 아기를 안 낳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말띠 여자는 결혼조건 등에서 불리할 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다.

문제는 요즘 부모들의 그런 생각이 노파심 정도가 아니라 강박관념 수준이라는 점이다.

말띠라는 것이 진짜로 약점이 될 수도 없지만, 이 세상에 약점 없는 인생은 없다.

만일 자녀들을 약점 없는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바로 그 약점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 될 것이다.

고통 슬픔 역경 부족함 등은 모두 힘과 지혜와 겸손을 주는 스승이다.

여자의 팔자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도 버려야 한다. 여자들이 사회에 나가 불리한 조건들을 극복하고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왔는데, "여자 팔자는 고와야 한다"는 과거의 생각에 언제까지 갇혀 있을 셈인가.

이혼한 여자, 거듭 파경에 이른 여자, 가족의 생계를 맡아 허덕이는 여자, 자기 성취를 위해 험난한 길을 마다 않는 여자, 남자들이 독점하던 세계에 도전하는 여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모두 팔자가 드센 여자인가. 현모양처의 외길을 걷느라고 마음 고생 몸 고생으로 한 평생을 바친 여자만이 팔자 좋은 여자인가.

당신의 딸이 그런 현모양처로 살기를 진심으로 원하는가.

정말로 좋은 팔자는 자기 앞에 닥친 역경들을 최선을 다해 극복할 수 있는 팔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자도 여자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팔자가 곱고 단순해서 맹꽁이 같은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누가 부러워 하겠는가.

2002년 말의 해에 출산을 기피하는 부부들이 많다는 것은 유감이다.

60년전에 태어난 말띠 딸들도 편견 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오늘 남의 나라 속설을 끌어다가 딸들의 팔자에 연관시킨다는 것은 여성 모독이다.

올해 많은 말띠 딸들이 태어나기 바란다.

발행인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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