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루주' 발표한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거짓말은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이다.
진실은 장미와 같다.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언제나 자라지 않을 것 같았던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된다.
재일동포 소설가 유미리(34)씨는 신작 장편 ‘루주’(열림원 발행)에서 속삭인다.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세계를 어찌 그리겠나요. ‘꿈’이 없는데 ‘꿈’을 팔다니…”
1973년에 자살한 CF 감독의 유서다. 행복한 거짓말을 만들면서 아이처럼 살아가다가 추한 세상을 만난 어느날 죽어버린 사람.
진실은 그만큼 고통스럽다. 죽지않고 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유씨는 소설을 쓴다.
화장품 회사에 막 입사한 스무살 여성 다니기와 리사에게 ‘사건들’이 일어났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싶었던 리사는 우연한 기회에 어쩔 수 없이 화장품 모델이 돼버렸다.
여기에다 스물 두 살이나 많은 이혼남과 성(性) 정체성이 모호한 게이 남자를 왔다 갔다 하면서 가슴을 앓아야 한다.
자신이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남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게이는 진실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다.
화장하지 않는 맨얼굴을 편안해 하던 리사는 그날 이후 빨강색 루주와 파란색 섀도우를 두껍게 바른 배우가 된다.
인간에게는 그런 날이 온다.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첫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니”라고 말하는 사람을 죽도록 미워했는데, 그 사람처럼 말하는 첫날이 온다. 동네 시장을 갈 때나 친한 친구를 만날 때에도 루주를 바르게 되는 날이 온다.
모든 작가는 ‘성장소설’이라는 창작의 과정을 겪게 된다.
유씨는 스무 살 처녀 다니기와 리사의 괴상한 연애 이야기를 쓰면서, 아픈 진실을 받아들인다.
성 정체성이든 무엇이든 아무런 의심 없는 순전한 믿음이 흔들릴 때, 인간은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좌절한다.
마흔 두 살의 이혼남에게 사랑의 실패는 슬프지만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다.
스무 살 여성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을 뿐”이라며 모델 노릇을 거부했지만, 어느새 ‘아름답지 않은 세계를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사회의 거짓말에 동참한다.
별거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유씨는 가족을 주제로 한 소설에 매달렸다.
유부남의 아이를 임신하고 미혼모의 길을 선택한 유씨는 자기 얘기를 고백하는 에세이를 썼다. 이제 그는 다른 길로 나아가야 한다.
플롯이나 문체는 유행이 지난 감각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작가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로서 소중하다.
리사를 쫓아다니던 한 남자는이렇게 자문한다.
어떻게 번데기가 나비로 부화하듯 어느날 갑자기 어른이 돼버리는 걸까? 그 질문은 이미 답을 갖고 있다.
사람은 ‘번데기가 나비로 부화하는 것처럼’ 성장해버린다. 아름답게, 그리고 흉한 껍질을 남기면서.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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