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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뷰 / 월드컵 개막식 총연출자 손진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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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뷰 / 월드컵 개막식 총연출자 손진책씨

입력
2002.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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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의 해가 밝았다.월드컵 관련 인사들에게 올해는 가장 분주한 해가 되겠지만 연극인 손진책(55ㆍ극단 미추 대표)씨는 지난 몇 개월을 ‘5월 31일 오후 7시 30분’만을 염두에 두며 지내 온 사람이다.

프랑스와 세네갈의 개막전을 앞두고 서울 마포구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지는 개막식 때문이다.

지난 해 7월 말 월드컵 개막식 총연출자로 선정된 지 벌써 5개월 여.

6만 4,000여 관중은 물론 TV를 통해 전세계 축구 팬 20억 명 이상이 지켜볼 개막식 준비에 여념이 없는 그를 상암 경기장에서 만났다.

-월드컵이 진짜 얼마 안 남았습니다. 개막식 연출자로서 이 경기장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라운드를 볼 때마다 커다란 ‘마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막식이란 것도 이 마당에서 펼쳐지는 일종의 흥겨운 마당놀이가 아닐까요. 더욱이 상암경기장은 트랙이 없어 관중과 공연자가 함께 호흡하는 공간으로는 제격이지요. 방패연과 황포돛배를 닮은 경기장 모습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이 마당을 잘 채우고, 잘 비우는 것이 곧 개막식이겠지요.”

-경기장이 개막식장으로서 부족한 점은 없습니까.

“전광판(가로 25.1m, 세로 9.2m)이 너무 작은 것은 아쉽습니다. 관중은 행사를 직접보기도 하지만 전광판을 통해 자신이 본 내용이나 못 본 내용을 확인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 역할을 해 주기에는 전광판이 아무래도 작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개막식에서는 커다란 ‘줌 샷’의 도구로서 전광판을 적극 활용할 계획입니다.”

-개막식의 구체적 내용은 당일까지도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워낙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한 말씀 해 주시지요. 월드컵조직위원회는 이번 개막식을 ‘동양 정신과 IT산업의 접목’이라는 주제로 치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개막식은 TV 프라임 시간대에 30여 분 동안 전세계에 방송되는 국가 CF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 한국의 전략산업으로 서정보통신(IT)산업의 발전상을 소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그리고 동양에서 처음 열리는 월드컵인 만큼 여백을 중시하는 동양 사상을 가미해야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더 이상 공개하면 안 되니 너무 자세한 것은 묻지 말아주세요.”

-IT 하면 우선 백남준씨의 비디오 아트가 떠오릅니다. 월드컵조직위에서도 백씨의 작품이 개막식을 수놓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백씨의 작품 자체를 선보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비디오 아트는 실내 공연에서는 효과적이지만 상암경기장처럼 텅 빈 야외 공간에서는 그리 눈길을 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백씨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거의 유일한 한국 예술가라는 점에서, 비디오 아트의 일부 컨텐츠는 수용할 생각입니다. 축구공 모양의 조형물을 통해 국경과 인종, 언어를 초월해 누구나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국제축구연맹(FIFA)정신도 구현해 볼 생각입니다.”

-서울 올림픽대회 때처럼 다수의 군중이 동원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잔디 보호를 위해서도 매스게임이나 인해전술 식의 군중 동원은 없을 것입니다. 88 서울올림픽이 ‘백화점’식이었다면 월드컵 개막식은 ‘전문점’식으로 치러질 것입니다. 의연함과 자신감이 돋보이는 간결한 퍼포먼스로 치르고 싶습니다. ‘비움으로서 채운다’는 역설의 동양 미학을 작지만 오붓한 행사를 통해 선보이고 싶습니다.”

-역대 월드컵 개막식과는 어떻게 차별성을 두실 건가요. 올해가 말 띠 해인데 혹시 말의 형상이나 이미지도 응용됩니까.

“로마대회는 의연함, 파리 대회는 창의성이 돋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회는 한국의 전통 오방색(五方色)을 최대한 살리면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마당’으로서 경기장의 현장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킬 계획입니다. 이런 점에서 관중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죠. 또한 꼭 사물놀이는 아니지만 우리 고유의 음악을 재창작해 선보일 계획도 있습니다. 12간지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풍습이라 세계 시민을 대상으로 한 개막식 소재로는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이번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대회입니다. 개막식에 일본의 문화나 풍습 같은 것도 포함됩니까.

“본선조 추첨 행사가 지나치게 한국적으로 치러졌다는 지적과, 개막식에는 일본을 배려해 달라는 ‘높은 분들’의 주문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을 중심으로 해서 일본을 조금 배려할 계획입니다.”

-연출자로서 부담이 느껴지거나 특히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까.

“많죠. 우선 FIFA가 개막식 시간으로 규정한 30~40분 안에 모든 걸 보여줘야 합니다. 오프닝 시간이 완전한 낮도, 완전한 밤도 아닌 오후 7시 30분이라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모든 행사를 조명이 켜진 야외 마당에서 치른다’는 것이 대전제가 돼야 합니다. 이밖에 후원사 제품만 써야 된다는 점, TV 중계용 카메라 위치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 등도 빼놓을 수 없죠. 그러나 개막식 역시 마당에서 펼쳐진다는 점에서 연극을 연출할 때와 별 다를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축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축구는 전쟁의 축소판이지요. 인간의 본성과 야성이 자연스럽게 그라운드에서 분출되는 것이 축구입니다. 그러나 같은 전쟁이라도 나름대로 룰과 규칙이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지요. 그런 점에서 축구는 삶의 축소판이 아닐까요. 선수들간의 패스는 민족과 국가간 의사소통이지요.”

-준비는 어느 정도 됐습니까. 원래 계획대로라면 1월부터는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텐데요.

“본격연습에 들어가는 것은 3월이 돼야 가능합니다. 그전에 행사 주최측인 월드컵조직위와 제일기획, 금강기획 담당자들과 수시로 만나 행사 내용을 계속 수정 보완할 계획입니다. 모든 스태프가 열정을 다해 일하고 있는 만큼 개막식 때까지 안심하고 기다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약력

▲1947년 경북 영주 출생 ▲1970년 서라벌 예대 연극과 졸업 ▲1973년 극단민예극장 창단,민예극장 대표(1982~86),1986년 극단 미추 창단 ▲'서울 말뚝이' '배비장전''오장군의 발톱'등 수십 여 편 연극 연출 ▲88서울올림픽 전야제연출,2000년 서울연극제 예술감독 ▲연극배우 김성녀(52)씨와 1남1녀

▲극단 미추 대표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전야제도 초대형 축제로…

월드컵에는 개막식만 있는 게 아니다.

개막식에 앞서 5월 30일 서울에서 치러질 전야제와 10개 개최 도시 경기장에서 경기가 열릴 때마다 독자적으로 펼쳐지는 각종 문화행사도 풍성하다.

개막식 행사에 105억 원, 전야제에 110억 원, 각 경기장 별 문화행사에 10억 원의 예산이 배정돼 있다.

5월 30일 오후 7시부터 4시간 동안 열리는 전야제 역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다.

한강 주변이나 광화문 등 서울시내 3~5개 지역을 동시에 연결하는 초대형 문화예술축제로 진행될 예정.

한국의 전통미를 살릴 이 행사에는 조수미 신영옥 등 세계적인 한국 성악가가 출연할 것으로 알려졌다.

100만~150만 명으로 예상되는 참가 인원 규모로는 개막식(500~600명)을 능가한다.

경기장별 문화행사는 32개 본선경기를 보기 위해 방문한 국내외 관중에게 월드컵의 열기와 즐거움을 전한다는 취지에서 치러진다.

경기 개최 당일 그라운드와 트랙, 관중석에서는 각 도시 특색에 맞춘 20분 이내의 문화행사가 열리고, 경기 시작 3시간~1시간 전 경기장 주출입구와 광장 등에서는 댄싱 퍼레이드처럼 경기 분위기를띄울 수 있는 소규모 행사가 줄줄이 펼쳐진다.

한편 대회 기간(5월 31일~6월30일) 중에는 월드컵조직위원회 주최로 글로벌 콘서트(6월 24일), 중앙정부 주최로 월드컵기념 총체극 ‘해가 뜨고 달이 지면’(6월 10~30일) 등 19개 행사, 각 개최도시 주최로 60개 문화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프랑스월드컵 개막식

1998년 6월 10일 열린 프랑스 월드컵 축구대회 개막식은 ‘축구의 꿈’이라는 주제로 치러졌다.

8만 여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파리 교외 생 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펼쳐진 개막식은 경기장을 커다란 ‘정원’으로 가정해 비료를 뿌리자 축구공 모양의 ‘축구화’가 탄생한다는 시적인 내용이 압권이었다.

세계적인 이벤트업체 ECA2가 연출한 개막식은 우선 2명의 심판이 축구공을 경기장 한복판에 놓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어 죽마를 탄 5명의 거인과, 머리에 잔디를 인 ‘잔디인간’이 16개 조각으로 된 대형 삼각형 천으로 경기장을 뒤덮었다.

그리고 거인이 비료를 정원에 뿌리자 축구화가 활짝 터지면서 3,000여 개의 풍선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내용이었다.

시민과 학생 600여 명이 참가해 개막식으로는 비교적 짧은시간인 15분 동안에 이 모든 것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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