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아침을 열며] 제 자리 지키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제 자리 지키기

입력
2002.01.03 00:00
0 0

월드컵과 대통령선거의 해가 열렸다.새해 첫날 TV 뉴스도 월드컵 상암 경기장에서 진행하며 월드컵 경기의 예상과 대선 후보들의 가상대결 여론조사 결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5월에는 월드컵과 지방선거, 12월에는 대선, 그리고 부산 아시안 게임과 보궐선거까지 합치면 올해는 축제의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가장 짜릿한 승부의 대결을 보여주는 스포츠와 정치의 대축제가 몰려 있으니 참 볼 것이 많은 한 해가 될 것 같다.

월드컵 특수로 5조원의 수익이 예상된다 하고, 몇 차례의 선거로 경기는 거품을 일으키며 부양될 것으로 보인다.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은 우리 선수들에 대한 응원과 외국손님맞이로 우리를 분주하게 만들 것이다.대선을 앞두고 각종 정책 공약들이 제시될 것이고, 희망찬 미래에 대한 공약들이 난무할 것이다.

언론들은 앞 다투어 누가 대권을 잡을 것 인가로 흥미를 유발시켜 뉴스가 드라마의 시청률을 앞지르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관료들은 올 한 해 정책을 차분히 수립하고 집행하기보다는 중요 정책을 새 정권의 수립 후로 미뤄놓기 쉽다.

지식인들도 대선 후보들의 정책을 만들어주기 위해 분주할 것이고, 기업들도 설비투자나 장기전략을 세우기보다는 어느 후보가 유리한가를 분석하는데 동분서주할 것이다.

결국 올해의 초반은 월드컵으로 온 국민들이 들떠 있다가 후반에는 대선의 축제에 온 나라가 들썩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올해는 대선이 있었던 1997년의 쓰디쓴 추억을 돌이켜 보는 현명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해에는 OECD 가입으로 문민정부의 세계화 추진이 열매를 걷는 듯했다.

세계 무역규모 13위, 국민소득 1만불 달성으로 곧 세계 10위권 내의 선진국에 들어간다고 온 나라가 들떠 있었다.

선진국에 들어가기 위해 각종 규제완화가 추진되었고, 이제 발전도상국 시절의 정부의 역할은 더 이상 필요없다고 소리 높였다.

그러나 규율되지 않은 시장의 자율화는 엄청난 혼란을 초래했다. 금융자율화로 외국의 단기자금이 대책없이 유입되었고 정부는 대선의 혼란에서 제대로 시장을 통제하지 못했다.

국가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대선의 축제에 빠져들어 국정을 챙기지 못했다.

결국 남의 집 불구경하듯 동남 아시아의 외환위기를 지켜보다가 하루아침에 국가 파산 일보직전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후IMF 관리체제로 들어가 대량실업, 기업파산, 해외매각, 부실금융에 대한 공적자금 투여 등힘들게 4년을 보냈다.

이를 돌이켜 볼 때 관료, 지식인, 기업인, 정치가 등 이 사회의 지도층은 그당시 모두 제자리를 지키지 못했던 것에 크게 반성해야 한다.

국민의 정부가 이끈 4년 동안 우리 국민들은 힘들게 위기를 넘겼다. IMF 위기도 어느 나라보다 잘 극복했고, 국가 신인도도 상향 조정되었다.

남북관계 개선과 개혁정책의 추진도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뛰어난 위기대처능력이 또 한번 입증된 셈이다.

이제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 등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또한 해가 될 것이다. 하지만 또 한번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동분서주하다 내년을 다시 위기로 시작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 나라 축구경기를 볼 때마다 잘 이겨 놓고도 후반 5 분을 지키지 못해 동점이 되거나 역전이 되는 것에 안타까워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감독과 코치가 달려 나와 선수들에게 제 자리를 지키라고 소리쳐 보지만 흥분된 선수들은 우왕좌왕하다 어이없게 골을 내주곤 한다.

올한 해는 우리 모두 제 자리를 잘 지키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축제가 끝나고 나면 치워야 할 쓰레기는 모두 우리 몫이다. 신년 벽두에 덕담만으로는 부족해서자중자애(自重自愛)하라는 말씀을 덧붙이던 옛 어른들의 당부가 새삼 떠오른다.

/염재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