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감독이 말하는 '월드컵 구상'≪“나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을 맡은 뒤 1년 동안 늘 강조한 것이 ‘마이 웨이’였다. 자신의 소신대로 한국을 월드컵 16강으로 이끌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과연 16강진출에 대한 그의 자신감과 계획은 어떤 것일까. 히딩크 감독의 생각을 일인칭 화법으로 엮어 보았다.≫
/편집자주
내가 한국팀을 맡은 뒤 한국기자들은 ‘과연 월드컵 본선 16강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지난 해 11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나는 16강을 자신한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사람들은 16강을 자신하냐고 물으면서도 동시에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런 자세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현실주의자이며 이미 훈련을 통해 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물론 여전히 세계축구와의 격차가 있고 이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16강을 자신하는 까닭은 선수들의 각오와 자신감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선수들의 마음자세는 본선 16강 진출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내가 온 뒤 선수들은 월드컵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한국축구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줄 것으로 여겼으나 외국인 감독으로서 나름대로 문제점도 있었고 시행착오도 겪었다. 일부 선수들은 나의 조련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평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축구가 세계강국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한국축구를 세계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한 첫 단계를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패배도 많이 겪었지만 대표팀의 전술향상에 좋은 밑거름이 됐다. 특히 지난해 11월의 평가전(세네갈, 크로아티아)을 통해 세계와의 격차를 많이 줄였고 12월 미국과의 평가전에서도 가능성을 확인했다.
지금까지는 수비의 조직력 강화에 많은 신경을 썼지만 앞으로는 공격부분에 더욱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선수 개개인의 평가를 끝낸 지금도 선수들이 고쳐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개개인의 전술소화 능력과 정신력의 세밀한 부분까지 가다듬을 계획이다. 오는 5월쯤이면 달라진(완성된) 한국팀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경기마다 선수들이 적재적소에서 뛰는 전술적인 움직임과 정신력을 중시한다. 훈련 중 때때로 주심을 보는데 많은 선수들이 판정에 대해 항의를 한다. 아마 한국 프로리그에서의 버릇 때문인 것 같다. 한국 프로경기를 보면서 심판들이 너무 원칙적인 판정에 매달려 경기를 중단시킨다는 생각을 했다. 유럽과 남미의 경우 웬만한 상황에서는 휘슬을 불지 않아 경기가 훨씬 거칠고 강하게 치러진다. 한국심판들의 원리, 원칙적인 경기운영은 선수들의 기량향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떤 기자는 왜 필드골이 적게 터지냐며 공격력 빈곤을 지적한다. 옳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월드컵에서의 득점은 세트플레이에 의한 비중이 높다. 모든 골은 골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앞으로 남은 기간 득점찬스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공격훈련을 실시할 것이다. 당연히 세트플레이에 의한 득점력도 더 향상시킬 것이다.
조추첨 결과, 우리의 월드컵 본선 상대가 미국 포르투갈 폴란드로 확정됐는데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말하자면 어느 팀을 희생제물로 삼느냐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스포츠란 항상 예측 불가능하다. 축구는 더욱 그렇다. 만일 폴란드와 미국에게 승리를 거두고 포르투갈에 지지 않는다면 오죽 좋겠는가. 그러나 결코 쉬운 계획은 아니다.
조추첨 당시 많은 사람들이 폴란드에 대해 3~4골차로 이길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폴란드는 의외로 까다로운(tricky) 팀이다. 실전에서는 언제나 뛰어난 경기력을 보인다. 물론 나는 오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완벽한 정보수집과 정확한 분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11월의 크로아티아전이 끝난 뒤 언론에 밝혔듯이 나는 바른 길을 가고 있다. 선수들은 나의 주문대로 잘 성장하고 있다. 지난 해5월 컨페더레이션스컵서 프랑스에 0_5로 참패한 뒤에도 선수들에게 “결과에 창피해 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월드컵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목표대로 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여론을 모두 수렴하다 보면 내 축구철학이 흔들릴 수 있고, 전술적인 완성도가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선수들의 사생활을 전혀 문제 삼지 않는 것도 그 사람의 철학과 가치관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로지 나의 길을 갈 뿐이다.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대통령도 월드컵 1승을 원한다는 것을 알고 정말 놀랐다. 1승을 반드시 달성, 한국민에게 좋은 선물을 하고 싶다. 두 번째 선물은 16강 진출이 될 것이다.
/정리=유승근 기자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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