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수는 마당 중간에 장작개비 다섯 개를 엇갈리게 걸쳐 세웠다. 제일 마른 걸로 빼온다고는 했지만 장작 끝 부분이 약간 눅눅해져 있었다. 불쏘시개로 삭정이와 검불을 한 움큼 집어 장작 밑에 쑤셔 넣고 라이터 불을 들이댔다. 검불에 붙은 불이 파르르 타오르다 가라앉았다. 병수는 입술을 내밀어 후후 불었다. 입 속에서 빠져나간 구린내가 연기와 함께 섞여 밀려 들어왔다. 숨이 찰 정도가 되자, 불꽃이 삭정이에 옮겨 붙으면서 장작을 껴안듯 파랗게 일어났다. 그러나 삭정이는 제 몸을 태우고도 장작에 불을 붙이지 못했다.병수는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 속에서 활활 타고 있는 장작개비 두 개를 들고 나와 밑 부분에 찔러 넣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쪼그리고서 검불을 뿌렸다. 장작은 기지개를 펴듯 천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병수는 담배를 꺼내 장작에서 불을 붙인 다음 몸을 일으켰다.
등뼈 끝에서 통증이 느껴져 얼른 무릎을 짚었다. 여름 내내 허리를 숙이고 일했던 후유증 때문에 움직일 때마다 굳어버린 뼈를 억지로 펴는 것 같은 통증이 왔다. 병수는 두 손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눈 덮인 건넛산이 병풍을 쳐놓은 것같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중간을 칼로 그어놓은 듯 읍내로 가는 길만 가늘게 뚫려 있을뿐, 아름드리 나무조차 눈에 파묻혀 산 자체가 거대한 눈덩이처럼 보였다. 눈길 사이로 시내버스 한 대가 넘어왔다. 차가 달리는 것이 아니라 눈 위를 미끄러져 내리는 것 같아 병수는 버스가 마을로 내려올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버스는 언덕 중간 지점에서부터 경적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기사가 동네 사람들에게 버스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였다. 버스는 하루에 세 번 다니는데 마을 안쪽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갔다. 폭설이 쏟아지던 날부터는 아예 들어오지 못해 마을은 일 주일 동안이나 고립된 적이 있었다.
“여태 뭐허는겨? 물은 끓였남?”
어느새 왔는지 종만이 마당 끝에 있는 돼지우리 앞에서 서성거렸다.
“끓이구 있슈.”
종만이 집안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열려진 대문 사이로 보이는 수돗가에 숫돌과 금방 갈아놓은 칼 세 자루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종만은 다시 돼지우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병수는 보지 않아도 종만의 눈동자가 돼지 등뼈를 훑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종만은 지난 여름부터 돼지를 잡으면 등뼈를 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한때는 삼천여 평의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짓던 종만이 무리한 농기계 구입과 특용작물 시설투자로 망해, 빚더미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병수는 그냥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머니가 허리가 안 좋다고 허네. 누가 그러는디 짐승 등뼈는 다 좋댜.”
종만이 거짓말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병수는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하지만 웃음이 끝나기 전 잊으려 했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고, 그와 더불어 울분이 치밀었다. 병수는 장작개비 하나를 더 얹어놓고 발로 밟았다. 살짝 누른다는 것이 힘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장작더미가 주저앉으며 불씨가 종아리까지 튀어 올라왔다. 병수는 장화발로 성의 없이 군데군데 흩어진 불씨만 중간으로 긁어모았다.
“아저씨 오셨슈. 왜 이렇게 일찍 왔대유?”
뒷길 쪽에서 팔 홉 페트병 소주를 들고 오던 아내가 종만에게 인사를 건넸다.
“뭐하느라고 이제 오는겨?”
병수는 아내를 쏘아보며 소리질렀다. 아내는 병수의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주저앉은 장작을 가지런히 세우고 발을 올렸다. 산길로 내려와서 발목까지 붙어 있던 눈이 이내 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시집 올 때만 해도 기가 드세던 아내가 아이를 못 갖는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세월이 흐르면서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결혼하고 삼 년 만에 두 번이나 유산을 하고 얻은 아이의 모습은 말 그대로 괴물과 다를 게 없었다. 머리와 눈썹이 붙어 이마가 없었고, 가슴은 방패를 단 것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병수는 간호사가 안고 있는 아이를 받지 못하고 떨리는 양손을 꼭 잡고만 있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스며들었는데도 의사와 마주앉았을 때까지 손을 놓지 못했다.
“아이는 엑스 염색체 하나가 없는 터너 증후군입니다. 문제는 이 아이가 대동맥 축착이라는 데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대동맥이 좁아 생명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하여 동맥을 늘여야 합니다”
의사의 입이 닫히는 순간 병수는 더 이상 들어볼 것도 없이 아이와 자신이 겪어야 할 미래를 선명히 보았다.
“가족 중에 이런 증상을 보인 사람이 있습니까? 할아버지대 또는 고모, 외가 쪽이나….”
의사는 백지 위에 부(父)와 모(母)자를 중심으로 가계도를 그리며 말을 꺼냈다. 병수는 그때 가서야 어렸을 적에 언뜻 들은, 막내 외삼촌이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괴물 같은 모습으로 태어나 죽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병수는 의사에게 혹시라는 단서를 달고 외삼촌 이야기를 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에서부터 사다리 타듯 외삼촌까지 굵은 줄을 그었다. 그리고 정자와 난자, 유전자, 결합, 중복, 결실이라는 단어를 섞어 긴 설명을 했다. 병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는 몰랐지만 어머니를 통해 자신의 핏속에 나쁜 병균이 흐르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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