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는 새해부터 2002 한일월드컵 본선무대에 진출한 31개국(한국제외)의 대표팀전력과 축구문화를 현지취재를 통해 심도있게 분석,소개하는 시리즈를 내보냅니다.한국과 함께 D조에 속한 미국을 첫번째로 하는 시리즈는 새 천년 첫 지구촌축제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본선진출국의 축구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미국 축구대표팀 해부
1998년 10월 부임한 미국 대표팀의 브루스 아레나 감독이 최근까지 테스트한 선수는 80여명. 그 중 59여명을 A매치에 기용했다.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검증이 덜 된’ 신인 25명을 전격 A매치에 데뷔시켜 실전능력을 실험하는 배짱을 보여 선수선발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 대표팀의 실력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1승 제물로 생각하는 것만큼 녹록한 상대는 아닌 것이다.
■ 유럽식도 남미식도 아니다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이 미국의 최고강점이다. 국내 전문가들이 본선 조 추첨 직후 미국을 힘을 바탕으로 한 유럽식 축구를 하는 나라로 평가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현지 취재 결과 이는 지극히 단세포적인 분석임이 드러났다. 미국은 유럽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선수와 남미 출신이 두루 섞인 독특한 스타일을 갖고 있다.
전 국가대표 출신 재미동포 임국찬(61)씨는 “여기에 미국축구는 한국처럼 악착 같은 면과 넘쳐 나는 승부욕을 겸비했다”고 덧붙인다. 임씨는 2~3번의 짧은 패스에 이은 긴 연결 등의 패턴도 한국과 미국이 닮았다고 분석했다. 미국팀은 패스와 마무리 면에서 그다지 세밀하지 못해 기회를 많이 놓친다. 개인기도 남미선수들에 비해 떨어진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 따라서 임씨는 “한국과 미국의 대결은 자칫 지루한 공방전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며 “체력이 승부의 최대 변수가 될 것 같다” 고 전망했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현재 미국국가코치협회 회원인 토니 노토(뉴욕 앰파이어 올스타스 감독)씨는 “한국과 미국 모두 단선적인 패턴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며 “승부는 선수들의 1대1 개인기 싸움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 미국의 병기
미국은 수비에서 속공으로 전환했을 때 공간패스가 아주 정확하다. 빠른 역습을 주도하는 선수는 단신(170㎝) 미드필더 코비 존스(31). 미국팀에서 가장 부지런한 말(workhorse)로 불리는 존스는 패스가 정확하며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1대1 돌파도 능하다. 미국선수 중 세 번째로 A매치 100회 출장기록을 돌파했다. 브라질과 잉글랜드 1부리그에서 남미와 유럽축구를 두루 섭렵했다.
미국 메이저리그 축구(MLS) 시카고 파이어의 봅 브래들리 감독은 플레이메이커 격인 클라우디오 레이나(28)를 최고의 선수로 꼽았다. 92, 96년 올림픽과 94, 98년 월드컵에 출전한 레이나는 어린 시절 아르헨티나에서 축구를 익혔고 94년 일찍이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 남미와 유럽축구에 대한 적응이 남다르다. 레이나는 미국축구 최고의 미드필더로 인정받는 탭 라모스의 후계자로 평가받는다.
노토 감독은 유소년 축구교실에서 자신이 직접 지도했던 수비형 미드필더 크리스 아마스(29)를 핵심선수로 지목했다. 아마스는 아레나 감독에게 발탁된 대기만성형이지만 현재는 확실한 주전. 98년 MLS 결승에서 아레나 감독이 이끄는 DC 유나이티드의 공격을 철저히 차단해 인정을 받았다. 아레나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뒤 처음으로 가진 호주전이 아마스의 첫 A매치 경기였다. 시드니올림픽에는 미국의 와일드카드로 출전하기도 했다. “미국은 수비가 강하다”는 아레나 감독의 평가는 아마스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축구, 美 주류스포츠로 급부상
미국의 4대 스포츠는 야구, 미식축구, 농구, 아이스하키이다. 세계최고의 스포츠 축구는 유독 미국에서만 자리를 잡지 못했다.
‘축구와 미국의 예외’라는 부제가 달린 ‘오프사이드’의 저자 안드레이 마르코비츠는 그 이유를 3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19세기 야구가 봄ㆍ 여름의 스포츠로, 미식축구가 가을 스포츠로 중산층의 각광을 받으면서 축구는 ‘보는 스포츠와 하는 스포츠’ 모두의 지위를 잃었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민족감정’. 19세기 야구와 미식축구 등이 미국 고유의 스포츠로 각광 받은 반면 축구는 영국의 스포츠로 인식됐다는 점이 축구발전을 저해했다는 것. 미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축구를 경시했다. ‘야구, 미식축구, 복싱을 좋아하면 미국인’이라는 인식까지 퍼졌다.
셋째는 탁월한 축구행정가와 기구의 부족이다. 미국 축구명예의 전당의 윌 런 회장은 “1,2차 대전을 겪으면서 미국인들이 적국이었던 독일, 이탈리아에서 인기가 높은 축구에 대해 묘한 반감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실적으로는 전후반으로 나뉘어 열리는 축구에 상업광고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된다.
그러나 최근 어린이들 사이에서 축구붐이 조성되며 희망적인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거의 모든 어린이가 축구를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중화됐다. 어린이 축구인구 증가로 ‘사커 맘(soccer mom)’이라는 새로운 용어도 등장했다.
자녀를 축구장에 데려다 주는 극성 부모를 일컫는 말이다. 시카고 월드컵후원회 수석부회장인 이상천씨는 “미국에서 야구장이 축구장으로 변하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다”고 말할 정도. 런 명예의 전당 회장은 “10년 전 미국의 월드컵 예선전의 관중석은 텅 비어 있었지만 10년 뒤 월드컵 예선전의 관람객수는 6만명을 돌파했다. 축구는 미국의 다인종 다문화의 또 다른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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