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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해외전문가 연쇄대담 / (상)신국제질서와 미국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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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해외전문가 연쇄대담 / (상)신국제질서와 미국의 역할

입력
2002.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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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구랍 22일 CNN과 공동실시한 여론조사결과를 토대로 “9.11 테러는 미국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역사가는 앞으로 21세기 현대사를 테러전사(Before Crisis)와 테러후사(After crisis)로 구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하지만 테러와 전쟁이 지나간 뒤 의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 지, 해답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일보는 새 해를 맞아 워싱턴과 도쿄(東京)에서 전문가들의 연쇄 대담을 마련해 테러후 새로운 국제질서와 미국의 변화, 그리고 그 변화가 동북아 안보환경과 한반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모색해 보았다.

첫 대담은 미국의 보수적 싱크 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래리 워츨 아시아연구소장과 미국의회가 국가예산으로 운영하는 미국평화연구소(USIP)의 윌리엄 드레넌 정책연구국장이워싱턴 내서널 프레스빌딩에 있는 한국일보 특파원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 워츨= 미국이 대(對) 테러전쟁을 수행하면서 구축한 반 테러 국제연대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까지 아우른 연대의 외연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가 없던 것이다. 일각에서는 아프간 전쟁이후 ‘신 팍스 아메리카나’(Pax-Americana)가 더욱 공고해지는 새 체제가 도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일극체제(Uni-Polar System)가 굳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드레넌= 전쟁에서 추진한 반테러 연대가 미국 위주의 일극체제를 강화시켰다는 지적이 정확한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이르다고 본다. 물론 미국이 팍스 아메리카나를 확대시켜 나갈 수 있는 힘(군사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킨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러시아나 중국, 유럽연합, 일본 등도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확보했다. 때문에 나는 장기적으로는 미국 위주의 일극체제보다는 다극체제로 지향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미국이 소말리아, 예멘, 이라크 등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확산시킬 때 연합전선이 지속될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 워츨= 정확한 지적이다. 반 테러 국제연대는 미국이 선포한 전쟁의 외교전략적 방안으로 탄생한 것이지만 이른바 국제사회의 신질서를 규정해나가는 데 기본축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확전론 못지않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오랜 분쟁이 어떻게 해결돼 나갈 지에 따라서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

● 드레넌=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대 테러전쟁을 수행하면서 테러에 대한 입장으로 적과 동지를 구분하겠다고 했는데 이 같은 개념규정은 앞으로도 미국의 외교정책을 크게 좌우할 것으로 본다. 아울러 북한, 수단 등 미국이 규정한 7개의 테러지원 국가들과 대량살상무기(WMD) 개발계획을 은밀히 추진하고 있는 ‘깡패국가’들의 경우, 보다 강화된 형태의 제재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 워츨= 북한의 경우 알 카에다 테러조직과 직접연계는 없는 것으로 정리돼가고 있다. 하지만 1994년의 제네바 핵기본 합의를 앞으로 어떻게 준수해나가느냐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 드레넌= 북한은 이번 테러와의 전쟁측면에서 보면 분명 여타 깡패국가들과는 다른 위상을 갖고 있다. 아쉬운 점은 북한이 이번에 국제 반테러 협약에 추가 가입하는 등 긍정적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좀더 진전되고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고립주의

■ 워츨= 부시 정부는 고립주의와 미 국익우선의 일방주의(Unilateralism)에 입각한 외교정책을 펴다가 테러 사건을 계기로 반테러 연합전선을 구축하기위해 이 같은 기조를 바꾸기 시작했다는 지적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적은 옳지 않다. 부시 정부는 전략적 동맹국들, 특히 유럽국가들과의 연대에 세심한 배려를 해왔다.

● 드레넌= 미국의 고립주의적 경향은 사실 빌 클린턴 정부 때부터 비롯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 8년은 의회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인 여소야대 정권이어서 행정부 독자적으로 외교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기가 어려웠다. 부시 정부는 출범직후 무조건적인 해외분쟁 개입을 자제하는 정책을 펴나가려 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상원 다수당을 민주당에 내주는 바람에 제동이 걸렸고, 테러사건으로 초당적 지지에 힘입어 큰 변화를 겪었다.

■ 워츨= 미국은 러시아 및 중국과 대 테러전쟁 이전부터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해 10월 러시아가 전략 핵무기 일방적 감축을 발표한 이후 밀도 깊은 대화가 전개됐다. 12월 들어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탈퇴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데 대해 러시아의 반발이 의외로 부드러웠는데 여기에는 바로 이 같은 배경이 있었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미중 간에도 무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미국의 변화와 리더십

● 드레넌= 대 테러전쟁에 돌입할 때는 미국이 35년 만에 다시 제2의 베트남전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하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하지만 미국은 우려를 불식시키면서 새로운 의미의 자신감을 회복했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새삼 자유와 정의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고, 단결심과 애국심의 고양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국민통합을 이뤄내는 부수이득도 챙겼다.

■ 워츨= 미국은 고귀한 생명과 재산을 잃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국제 테러분자들에게는 테러행위를 자행할 경우 반드시 응징당한다는 교훈을 되새겨줌으로써 국제사회의 신뢰를 획득해냈다.

● 드레넌= 대 테러전쟁이후 미국이 중동문제 등 해외의 이슈에 적극 개입하려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미국의 지도력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구촌의 모든 문제가 곧바로 워싱턴의 문제라고는 할 수는 없고 또 제3세계 국가들도 이 같은 움직임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미국이 개입하려 해도 국제법적인 합법성 여부와 해당국가의 주권침해문제 등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복잡한 변수들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미국의 행보를 가로막는 측면이 있다. 중동문제라는 특수상황을 제외하고 미국이 클린턴 정부 때보다 분쟁에 적극적인 개입자세를 보일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 워츨= 동감이다. 미국의 개입은 자제돼야 한다. 이스라엘의 경우는 미국의 도움 없이는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는 처지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인도-파키스탄 갈등의 핵심인 카슈미르 분쟁 등에는 절대로 개입해서는 안된다. 다만 핵무기의 비확산에 관련된 사안은 예외다.

● 드레넌= 부시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에서 강경파와 온건파가 알력관계에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을 강경파로 분류하는 데 동의하기 곤란하다.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도 기본적으로 이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나 직책과 역할이 달라 유연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 워츨= 현 외교안보라인은 과거 1991년 페르시아 걸프전쟁 당시의 지휘부가 다시 모인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이라크로 테러와의 전쟁을 확전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원칙론을 구사하는 경향이 있다. 당시에도 사담 후세인으로부터 완벽한 항복을 받아내고 그를 축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같은 주장은 현재도 유효하다. 다만 유엔이 이번 테러와 이라크와의 직접 연관성을 공격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동북아 정세 및 문명의 충돌

● 드레넌= 아프간 전쟁에 일본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전함을 파견함으로써 한국, 중국 등 과거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일본의 제국주의적 성향이 부활하지나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이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은 민주주의에 기반한 국가로서 과거 군국주의 일본과는 다르므로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일본이 독일, 이탈리아와 달리 과거사에 대한 근본적인 정리가 미흡한 점은 지적돼야 한다.

■ 워츨= 현재의 일본은 여러 면에서 진주만 공습을 자행한 나라와는 다른 나라임에 틀림없다. 일본 내에서도 과거를 흠모하는 극우파가 있긴 하나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평화유지군 활동 등 일본이 국제적인 이슈에 적극 참여하고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장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드레넌= 이번 9ㆍ11테러와 대 테러전쟁이 사무엘 헌팅턴이 일찍이 지적한 ‘문명의 충돌’의 한 징표라는 시각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일부 그런 측면이 있긴 하나 큰 테두리에서 보면 오사마 빈 라덴은 비(非)이슬람권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데 반해 미국은 테러조직과의 전쟁이라고 주장한다는 데에서 큰 차이가 있다.

■ 워츨= 동감이다. 빈 라덴은 비 이슬람권 뿐아니라 코란을 자신들과 다르게 해석하는 부류들과도 싸우려 한다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빈 라덴은 종교적 차원에서 뿐 아니라 알 카에다라는 강력한 테러조직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 먼저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문명의 충돌이라기 보다는 과격 이슬람분파의 일탈된 행태라고 보는 게 옳다.

정리=윤승용 워싱턴특파원

syyoon@hk.co.kr

●윌리엄 드레넌 / 美 평화연구소 정책연구국장

미 공사를 졸업한 후 주한미공군의 비행대대장 등을 지낸 뒤 레이건 정부에서 백악관 공군연락관으로 근무하는 등 야전과 전략분야를 두루 섭렵했다.미 국방대학과 국립안보연구소(NSS)의 선임연구원을 거쳐 미 외교협회(CFR)의 군사담당 연구원을 지냈다.조지타운대와 가톨릭대에서 학위를 취득했고 '한국정치분석'등 저서가 있다.

●래리 워츨 / 헤리티지재단 아시아연구소장

조지아주의 컬럼버스 대를 졸업한 후 입대,한국,태국,싱가포르 등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근무했으며 주 중국 대사관 육군무관을 지냇다.미 육군대학의 전략연구국장을 지낸뒤 예편,헤리티지 재단으로 옮겼으며 '동북아저서와 논문을 갖고 있는 국방안보분야의 권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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