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 위로 끌려나온 돼지의 심장은 미세하게 뛰고 있었다. 기석의 기술 덕분이었다. 심장이 완전히 멈춰버리면 몸 속에 피가 제대로 빠지지 않기 때문에 고기의 질이 떨어진다.“왜 그래, 갑자기 안색이 안 좋네?”
기석이 병수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하지만 병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점점 가늘어지는 돼지의 숨결을 바라보았다. 보다 못한 기석이 ‘내가 할까?’라며 병수의 손에 들린 칼을 달라는 시늉을 했다.
“아뉴. 지 손으로 할꺼유.”
병수는 칼 끝을 돼지 목에 대고 깊게 밀었다. 손바닥으로 생명의 마지막 떨림이 전해져 오는 느낌이 들면서 진저리가 쳐졌다. 마치 칼을 빼고 구멍 속을 들여다보면 생과 사의 경계선이 보일 것만 같았다. 피냄새와 함께 낯선 향수냄새가 풍겼다. 고개를 들어보니 언제 다가왔는지 상현이 옆에 서서 얼굴을 찡그린 채 보고 있었다. 칼을 잡은 병수의 손이 약간 미끄러져 내렸다.
곧바로 시뻘건 피가 콸콸 솟아올랐다. 아내가 화급하게 다가와 양동이를 들이댔다. 피는 반은 양동이로 들어가고 반은 밑으로 흘러내려 웅덩이 속으로 들어갔다. 병수의 손에 들린 칼끝에서도 핏방울이 떨어져 땅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만 받어.”
병수는 양동이를 발로 걷어찼다. 양동이에 든 피가 출렁하더니 거품을 냈다. 아내는 양손으로 양동이를 꽉 잡고 마지막 피까지 받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이 부어지고 병수와 기석이 털을 깎기 시작했다. 병수는 돼지 어깨 부분에서부터 엉덩이를 향해 칼을 밀었다. 녹슨 면도칼로 수염을 깎는 듯 손끝이 매끄럽지가 않았다. 병수는 칼날을 약간 눕히고 손놀림을 빨리 했지만 돼지의 몸 군데군데 살점이 패였다. 점점 돼지의 하얀 피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뒤집어 반대편 털도 깎아내고 마지막으로 물 두 양동이를 퍼부어 남은 털을 닦아냈다.
기석은 자기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손을 털고 물러났다. 병수는 장화에 묻은 피와 흙을 씻어내기 위해 핏물 섞인 웅덩이를 지근지근 밟은 다음 지붕 위에 올려놓았던 짧은 칼로 바꾸어 들었다. 날이 하얗게 서 있는 칼끝 위로 건너편 산 쪽으로 기우는 햇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병수는 칼끝을 돼지 목에 대고 쭉 그어 아래 부분까지 가르고 깊숙이 집어넣었다. 목뼈에 칼이 걸렸다.
“도끼로 쳐.”
기석이 눈치채고 도끼를 내밀었다. 병수는 괜한 고집이 생겨 칼을 흔들어 연결 부분을 찾아 힘을 주었다. 돼지머리는 어렵게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다음은 네 개의 발목을 자르고 배를 갈라야 했다. 뱃살이 많이 올라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럴 경우 칼에 힘을 주어야 하는데 잘못하면 창자를 다쳐 내용물이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비계 떼 버려.”
기석이 훈수를 했다. 이번에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양쪽 젖꼭지를 선으로 해서 뱃살에 붙은 비계부터 떼어내었다.
“뭐 혀. 바가지 가져와.”
기석이 소리쳤다. 아내가 바가지를 들고 쪼르르 달려왔다. 바가지에 비계를 내려놓자 반은 밖으로 나와 축 늘어졌다.
“병수 마누라가 비계를 잘 먹어. 저거 다 먹어도 모자랄 껴.”
상현의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병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아내의 등 뒤에 있던 시선을 거둬들였다.
“아따, 이놈 잡아놓고 보니 조선 반만 허네.”
기석이 돼지 앞다리를 양쪽으로 벌리며 말했다. 목과 네 발목이 잘린 데다 뱃가죽까지 떼어버린 돼지는 방금 전까지 생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었다. 병수는 돼지 뱃가죽에 칼끝과 손가락을 집어넣고 아래로 그었다. 비계를 떼어내서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뜨거운 심장과 허파, 간, 팔뚝만한 창자가 핏물과 함께 불뚝불뚝 튀어나왔다.
“목을 잘못 쨌구먼. 피가 남었어.”
기석이 병수를 힐책하며 혀를 찼다. 병수는 돼지 목을 찌를 때 칼이 손에서 미끄러졌던 것이 떠올랐다. 기석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병수가 돼지갈비뼈 사이로 양손을 집어넣어 힘껏 잡아당기자 핏줄이 몸에서 분리되면서 피가 새어 나왔다. 병수는 찢어진 핏줄을 보자 소름이 돋으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이를 낳고 이틀이 지나서야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의사가 아이의 사지를 찢어놓고 핏줄을 찾고 있었다. 헌데 핏줄이 얼마나 길던지 밤새 뽑아도 핏줄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병수는 의사를 잡고 왜 불쌍한 아이를 돼지 잡듯이 찢어발겨 놓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원래 사람의 동맥은 사지에 퍼져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수술을 포기했고 병수는 한 달 동안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기석이 빠른 동작으로 간을 떼어 숭숭 썰었고 아내는 소금에 고춧가루를 쳐서 들고 나왔다. 모닥불 옆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때묻은 플라스틱 소주잔과 피 묻은 간이 춤을 추는 것처럼 움직였다. 사람들의 입술은 이내 피를 빨아먹은 듯 붉게 물들어갔다. 바짝 다가와 구경하던 상현이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겨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병수는 침을 삼키며 안마당으로 들어갔다. 수돗가에서 팔뚝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입 속이 말라 담배 맛이 썼다. 아침부터 돼지 잡을 생각보다는 뜨끈뜨끈한 날간과 찬 소주 생각이 더 간절했다. 그러나 상현을 보자 무언가로부터 쫓기는 듯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어 도저히 날간에 손이 가질 않았다.
“병수 어딨어. 한 점 먹구 혀.”
기석이 소리쳤다. 병수는 못들은 척 한참을 더 앉아있다 몸을 일으켰다. 막 밖으로 나가려는데 인중에까지 피가 묻은 아내가 내장이 든 함지박을 힘겹게 들고 들어왔다.
“병신 같은 게 처먹는 건….”
병수는 스쳐 지나가는 아내에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내는 함지박을 수돗가에 내려놓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뭐 때미 심사가 또 뒤틀렸댜.”
병수는 아내의 목소리가 밖으로 튀어나가는 것을 잡기라도 하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소리나지 않게 욕을 하고 대문을 나왔다.
“저 사람들은 여름 내내 죽어라고 고생한 거 저러면서 잊는 거여.”
대문 앞에 서 있던 상현의 어머니가 상현에게 귓속말처럼 속삭였다. 병수는 일부러 엿듣기라도 한 듯 병수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상현이도 한 점 먹게나.”
기석이 상현에게 말했다. 상현은 징그럽다는 듯이 입을 꽉 다물며 고개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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