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새해가 여럿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내일은 양력으로 2002년이다. 불교식 달력으로는 2546년이다. 또 단기로는 4335년이다.음력으로는 말의 해이다. 하지만 나는 서양식으로 2001년의 마지막 날을 즐기며 몇 가지 즐거운 생각에 빠져들고 싶다.
한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다.
아무리 서양의 전쟁기념비에 한국이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런 환경은 한국사에 많은 비극을 가져왔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한국을 50년전 6ㆍ25전쟁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한국에는 중국과 같은 만리장성이 없다. 한국의 보물1호 남대문이 베이징의 자금성에 비길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한국의 사찰은 일본의 사찰보다 웅장하지 않다. 한국의 많은 보물은 진품이 아니라 과거의 모양대로 복원되거나 재건축된 것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산도 대개 중국이나 일본의 것보다 나지막하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은 판문점이지만 나는 판문점이 한국에서 가장 가볼 만한 곳으로 여겨지는 날이 빨리 지나갔으면 한다.
나는 남산 서울타워나 민속촌을 보기위해 8,000km를 거슬러 한국에 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울에서 평생을 살면서도 아직 남산이나 민속촌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한국인을 만나기도 했다. 한국은 나의 고향 스웨덴의 이웃 나라인 덴마크와 유사한 점이 있다.
덴마크가 볼 것이 많은 나라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덴마크, 특히 수도 코펜하겐을 북유럽에서 가장 쾌적한 곳으로 여긴다.
이 점이 내가 한국에 와서 덴마크를 떠올리는 이유다. 난 1999년부터 한국에서 살았는데 이 곳이 정말 좋다.
한국은 사람으로 가득한 좁다란 길이 많다. 그 곳은 종종 전철역 근처이고 주변에는 작은 가게들이 자판기, 노점상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아이를 등에 업은 아주머니,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지나가고 개가 돌아다니며 짖는다.
양복을 입은 남자들, 목도리를 두른 대학생들, 벤치에 앉아 하루를 보내는 할아버지,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가 있다.
가끔은 한복차림의 할머니도 있다. 거리는 24시간 내내 삶과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거리풍경은 서양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이 곳에선 퇴직한 사람들이 무리지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고, 소주병을 비우며 진정으로 삶을 즐기고 있다.
한국에서는 좋건 나쁘건, 점심시간이면 사방에서 김치냄새를 맡을 수 있다.
한국은 아름다운 한국여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교복을 입어 모두 똑같고 평범하게 보이는 여학생들도 학교를 졸업하면 곧 숙녀로 변한다.
숙녀들은 단정한 머리모양과 화장, 공을 꽤나 드린 옷맵시로 더욱 아름답다. 내가 중국인 아내에게 자주 말하듯 한국에는 여성용 화장품이 풍부하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은 친절하고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화난 한국사람을 본 적이 없고, 내게 불쾌한 말을 건네는 한국인도 보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자기 나라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마치 학자처럼 내게 한국의 아름다운 불탑을 소개하거나 서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칭찬해주기를 바란다.
모두가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한국의 절, 산, 기념비가 아니다.
내게 한국은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방식을 통해 다가온다.
2002년의 세밑, 나는 이처럼 좋은 한국인 모두에게 복된 새해를 기원한다. 나는 한국관광공사, 학생들, 동료, 그리고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김대중 대통령이나 청량리 텍사스의 소녀들, 그리고 북한 사람들에게도 새해에 행운이 있기를 기원한다. 물론 한국 축구팀에게도.
/스벤 울로프 울손 스웨덴인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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