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대형 비리사건 수사 때마다 주요 피의자나 참고인에 대한 신병확보 소홀로 낭패를 보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이러한 수사상의 낭패는 진승현ㆍ이용호ㆍ정현준 게이트 등 정ㆍ관계 로비의혹이 불거진 수사 때마다 반복돼왔으며 이외에도 고속철도 로비의혹사건, 대우그룹 분식회계ㆍ횡령 사건, 세풍(稅風)사건 등 정치권 수사를 목전에 두고 발생해왔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충분한 내사를 통한 사전 점검과 금감원 등 1차 조사기관의 출국금지 권한 강화,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의 인원 및 시설확충 등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두 번 실패는 없다”며 기세 좋게 출범한 ‘진승현 게이트’ 재수사는 진씨의 구명 로비스트이자 정ㆍ관계 로비수사의 열쇠인 전 MCI코리아 회장 김재환(金在桓)씨의 도피로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검찰은 특히 한달여 동안 한번도 그의 출국사실을 확인하지 않고서 현상금을 내걸고 검거반을 가동시키는 소동을 벌이는 등 수사와 출입국관리 업무간 헛점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불과 석달 전인 9월에 터진 ‘이용호 게이트’에서도 비리혐의자에 대한 뒤늦은 출국금지가 논란이 됐다.
검찰은 이씨와 함께 속칭 ‘이용호 펀드’라 불리는 삼애인더스의 주가조작을 벌인 D금고 실소유주 김영준씨에 대해 이씨가 구속된지 3일 뒤 출국금지했으나 그는 이미 한달 전 해외로 나간 상태였다.
검찰은 이에 앞서 이씨의 내사과정에서 김씨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씨의 구속영장에 김씨를 ‘이씨의 공범’으로 적시해 놓고도 제때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또한 수사도중 지난해 수사팀의 이씨 비호의혹을 수사한 특별감찰본부가 임양운(林梁云) 당시 서울지검 3차장이 이씨와 밀접한 관계였던 전 R전지 전무 윤명수씨에게 이씨 내사사실을 유출한 사실이 적발했으나 윤씨는 특감본부 출범 직전 일본으로 출국했다.
역시 정ㆍ관계 로비 여부가 핵심쟁점으로 떠올랐던 ‘정현준 게이트’도 검찰의 늑장출금으로 수사가 미궁에 빠졌었다. 금감원 관계자 등에 대한 로비의혹을 받고 있는 신양팩토링 사장 오기준(吳基俊)씨와 동방금고 사장 유조웅(柳照雄)씨가 미국으로 출국함으로써 검찰은 불법대출의 배후에 대해서는 수사성과를 내놓지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특히 검찰은 사건과 관련, 금감원의 고발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었음에도 이들의 출국을 방치했다 뒤늦게 출국금지를 요청하는 해프닝을 빚기도 했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당시 수사팀에 오씨 등의 출금을 권유했으나 중요인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묵살당했다”고 밝혔다.
충분한 범죄혐의를 확보하고도 순간의 실수로 피의자를 놓쳤다 뒤늦게 사법처리에 이른 사례도 적지않다.
지난해 7월 세금감면의 대가로 2억6,000여만원의 뇌물을 받은 김범명(金範明) 전 자민련 의원은 검찰이 소환통보를 하고도 출국금지를 하지않은 틈을 타 중국으로 출국했다.
검찰은 이후 김 전 의원에 대한 각고의 설득작업 끝에 국내로 불러들여 같은 해 11월에야 구속기소했다. 수출신용장을 조작해 은행으로부터 1,200억원을 불법대출받은 전 ㈜새한 부회장 이재관씨도 출국금지 하루 전에 일본으로 떠났다 4개월 뒤에 귀국해 불구속기소됐다.
이와 함께 정치권에 핵폭풍을 불러올 수 있는 세풍사건의 이석희(李碩熙) 전 국세청 차장과 대우그룹 비리사건의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 고속철도 로비의혹 사건이 프랑스 알스톰사 로비스트 최만석씨도 검찰의 본격 수사 직전 유유히 해외로 나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