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전ㆍ현직 이사들에 대한 배상 판결은 세계화 시대에도 여전한 재벌의 원시적 경영 행태에 대한 경종이다.재계가 주장하는 대로 이번 판결이 현실적으로 여러 부작용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역시 전근대적 사고에 근거한 것이고 보면 이번 판결이 담고 있는 미래지향적 계도성은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할 것이다.
삼성전자가 부실기업을 인수하거나, 계열사에 주식을 싼값으로 양도하는 과정에서 이사들이 취한 태도는 사후 결과론에 앞서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본다.
수많은 소액주주의 이해가 걸린 중대 사안을 충분한 검토과정도 없이 1시간 만에 밀어붙인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직무유기'다.
더욱이 재정적으로 비정상적 기업을 대상으로 하면서 '인수 타당성'이 아니라 '추진 방법'에 관해서만 논의한 것은 이사회가 이미 '거수기'였다는 방증이다.
이번 판결과 관련, 재계는 '경영상의 판단'에 대해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유감을 표시하고 있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옳은 지적이지만, 문제는 정말 '판단다운 판단'을 했느냐에 있다. 누구보다도 해당 이사들 스스로가 자문해볼 일이다.
이사들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 의무를 해태한 결과 기업을 망치고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그에 상응한 책임을 지는 게 상식이다.
이번 판결이 촉구하는 지향점은 분명하다. 첫째, 기업 임원들의 각성이다.
재판부는 '임원들은 모든 법적 책임이 자신에게 귀속된다는 점을 명심해 책임경영을 해야 한다'고지적하고 있다.
둘째, 재벌총수에 대한 경고다.
임원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하는 총수 독단체제의 폐해가 사회적으로 노출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셋째, 소액주주에 대한 기업 의무다.
기업의 의사결정 시 소액주주의 권리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교훈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비자금을 제공한 이건희 회장에게 배상판결을 내린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한마디로 이번 판결은 재벌기업에 대해 경영 투명성과 의사결정의 민주화 및 사회적 책임을 촉구해온 정책이나 여론의 압력에 대한 사법적 추인이다.
재계가 이번 판결의 부작용만 강변한다면 그것은 아직도 선진경영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다는 방증밖에 안 된다.
판결의 취지를 대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시민단체도 이번 1심 판결로소액주주운동의 개가를 거뒀다고 해서 독선이나 아집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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