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축구인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김용식선생”이라고 말한다. 그의 삶은 축구인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귀감이 될 만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도중에 특별히 어떤 사업에 손대 본 일도 없고 축구와상관없는 직업을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라는 말대로 김용식 선생은 평생 축구 밖에 몰랐다.가장 감동적인 일은 18세에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이래 술 한잔, 담배 한 개비 입에 댄 적이 없고 자신이 정한 목표는 모두 이루었다는점이다.
소년시절에 세운 ‘40세까지 선수생활’ 목표는 42세 되던 해인 1952년까지 계속됐고, 27세인 1936년 정한 ‘1만일 개인기 훈련’의 목표는 79년 1월에 끝맺었다. 1만일 훈련은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유럽선수들의 뛰어난 개인기를 경험하고 난 후 세운 목표였다.
그의 개인기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했다. 축구의 15개 기술을 모두 완벽하게 해냈다고 한다. 코치나 감독시절에 외국의 호텔 잔디밭이나 운동장에서 그의 훈련 모습을 본 축구 선진국의 지도자들도 감탄할 정도로 독특했다.
선수생활을 끝낸 뒤 그는 금성방직에 입사한 적이 있다. 친구인 김성곤 사장이처음에 이사로 영입하려 했으나 김용식 선생은 “경영을 모르고 경험도 없다”는 이유로 경비과장직을 택했다.
그가 입사한 것은 회사가 성장하면 축구팀을 창단하겠다는 생각에서였고 실제 61년에 그 꿈을 이뤘다. 그는또 모교인 고려대학으로부터 교수직을 권유받았으나 공부한 것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한국축구에서 선수로, 지도자로, 또 스포츠정신으로 볼 때그만큼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이제 해가 저물고 또 새로운 해를 맞는다. 이맘 때쯤이면 우리는 정리와 각오를반복한다. 월드컵의 해인 2002년은 어느 해와는 다르다. 우리 선수들은 어떤 각오를 다질 것인가. 75년의 삶동안 유아기와 말년의 2년 등8~9년을 빼고 오직 수도승 처럼 살았던 김용식 선생의 축구인생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 선생의 묘비문은 그를 이렇게 말한다. “축구공과피를 통하고 신경을 나누어 그것을 자신의 일부로 만든 불굴의 의지, 끊임없는 수련으로 스스로의 도를 완성한 만인의스승….”
유승근 기자
us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