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예산안 심의 시계는 꺼꾸로 가는 모양입니다."2001년을 불과 나흘 앞둔 27일 국회가 가까스로 111조9,800억원에 달하는 2002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자 경제 부처의 한 공무원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씁쓸하게 내뱉은 말이다.
국회의 예산안 통과시한은 헌법에 강제조항으로 분명히 명시돼 있다.
헌법 54조 2항에 따르면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전, 즉 12월2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청개구리 마냥 매년 예산 통과날짜를 계속 늦춰왔다.
98년에는 12월9일 예산안을 통과시켜 비교적 시한이 근접했으나 이후 99년(12월18일), 2000년(12월27일) 등 내리 4년 동안 통과시한은 뒷걸음질을 거듭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스스로 헌법을 짓밟고 있다는 비판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헌법을 무시하는 대담함'과 함께 국회 의원들은 정부가 3개월 이상 작업해 마련한 120조원 규모의 예산안을 열흘 만에 '요리'하는 순발력을 과시했다.
지난 10일 첫 회의를 개최한 국회 예결위는 "예산안 심의 작업을 공개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를 무시하고 작업을 진행, 열흘 만인 21일6,008억원을 삭감한 최종 안을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의원들은 정부의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대신 수 천억원대 지역구 민원사업을 슬며시 끼어넣었다.
매년 헌법을 무시한 채 예산을 통과시키면서도 위헌시비 한 번 없고, 새해 전에만 통과시키면 되는 게 아니냐고 느긋해하는 의원들의 모습에서 새삼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조철환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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