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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 4대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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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현장 / 4대 게이트

입력
2001.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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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 햇살이 뉘엇뉘엇 넘어가던 지난 9월2일 오후. 평온하던 대검찰청 기자실에 중수부의 엠바고(시한부 보도자제) 요청이 들어왔다. 공적자금 비리수사의 일환으로 이용호라는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CRC) 대표를 수사하고 있으니 어느정도 ‘익을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내용이었다.“중수부가 기업비리나 파고 있었단 말야” “큰 기사도 아닌데 엠바고 받아주지 뭐” 대어가 미끄러지는 수면은 고요하다고 했다. 올 한해 정ㆍ관계를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은 ‘4대 게이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틀 뒤 이용호(李容湖)씨가 계열사자금 등 600억여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수감됐지만 모든 언론은 한 부도덕한 기업인의 과욕과 그로 인한 경제적 파장만을 걱정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미 이씨가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의 동생 승환(承煥)씨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검찰과 언론의 불안한 동거는 일주일밖에 가지 못했다. 본보가 11일자로 이씨가 지난해 서울지검 특수2부에서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다 무혐의로 풀려났다는 사실을 보도한 이후 사건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굴러갔다.

13일 조직폭력배 출신 사업가 여운환(呂運桓)씨가 이씨로부터 로비자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긴급체포되면서 두 사람과 친분관계가 있다는 정ㆍ관계 인사들의 이름이 쏟아져나왔다.

이씨 변호인이던 김태정(金泰政) 전 법무장관과 수사지휘부였던 임휘윤(任彙潤) 전 부산고검장 등 검찰간부들이 이씨의 비호세력으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동생 관리를 문제삼아신 총장마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검찰을 못 믿겠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검찰은 특별감찰본부라는 초유의 기구를 구성, 진화에 나섰고 신 총장은 탄핵위기에 몰리는 수모를 겪었다. 어느새 이씨 사건은 권력형 비리사건을 뜻하는 이용호 게이트로 바꿔져 있었다.

이 게이트의 불똥은 이 달 하순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지난해 11월 정ㆍ관계 로비의혹을낳았다 미완의 수사로 끝난 ‘정현준(鄭炫埈) 게이트’로 옮아붙었다.

별개로 보이던 두 게이트는 김형윤(金亨允) 전 국가정보원 경제단장이 이씨의 보물선 인양사업에 개입했다는 의혹과 지난해 정씨가 동방금고부회장 이경자(李京子)씨로부터 금감원 검사무마 대가로 5,500만원을 받은 사실이 연결되면서 한배를 타게됐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정 게이트의 수사팀도특수2부여서 사건은 검찰과 국정원의 조직적 은폐의혹으로 번져갔다.

두 사정기관의 은폐의혹은 지난해 12월 ‘진승현(陳承鉉) 게이트’와 관련 김은성(金銀星) 전 국정원 2차장의 진씨 로비스트폭행사건이 지난달 13일 본보에 의해 폭로됨으로써 정점에 다달았다.

이후 진씨가 정성홍(丁聖弘) 국정원 경제과장과 민주당 의원에게 로비를 벌였던 것을 지난해 수사팀이 간과한 사실이 드러나자 검찰은 15일 최후의 수단으로 전격 재수사를 결정했다.

수사과정에서 김 차장을 정점으로 하는 국정원 경제단이 벤처기업을 관리하며 이들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았고, 수지김 살인사건의 주범인 윤태식(尹泰植)씨마저 국정원의 은폐와 후원속에 사업을 벌여온 사실이 밝혀졌다. 윤씨와 관련해서는 정ㆍ관계 인사들에게 주식로비 등을 벌인의혹이 추가돼 4대 게이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현재 ‘4대 게이트’는 특검과 검찰의 재수사를 거치며 한발한발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관행 또는 특수관계에 의해 사건을 왜곡해온 수사기관의 과오에 철퇴가 가해졌고 소문으로만 떠돌던 정치인들의 벤처자금 수수설도 조만간 꼬리가 밟힐 전망이다.

하지만 ‘4대 게이트’가남긴 가장 큰 교훈은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한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것이다.

손석민기자

hermes@hk.co.kr

■ 4대 게이트 칼바람

‘4대 게이트’로 올 한해 구속된 인사는 20명에 가깝다. 9월초 이용호씨가 주가조작과 횡령 혐의로 구속된 이후 불과 넉달만에 내로라하는 정ㆍ관계 인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스러져 갔다.

먼저 구명로비 명목으로 이씨에게 수십억원을 받아 챙긴 여운환씨가 철퇴를 맞았다. 이씨와 여씨는 국감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며 의원들의 예봉을 피해나가 빈축을 샀고 법정에서는 서로 ‘사기꾼’이라며 비방전을 펼치기도 했다.

경찰간부의 사촌동생으로 이용호펀드조성에 깊이 간여했던 금융중개업자 허옥석씨는 대검 파견 경찰관에게 사건무마비로 수천만원을 준 혐의로 구속됐고, 이씨의 자금줄 겸 주가조작 파트너인 최병호 체이스벤처 대표도 덜미를 잡혔다.

다시 터져 나온 진승현 게이트는거물급 인사들의 무덤이 됐다. 진씨로부터 수억원의 로비자금을 받아 핵심 배후인물로 지목된 정성홍 전 국정원 과장은 “나는 입이 없다”는 말과 함께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변호사 알선과정에서 1억여원을 횡령한 박우식씨는 “나는 희생양이며 배후가 밝혀질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구속의 변(辯)’을남겼다.

진씨의 정ㆍ관계 로비스트로 활동한 최택곤씨가 붙잡히면서 검찰의 칼바람은 권력핵심부를 향했다. 결국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과 신광옥 법무차관이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수인(囚人)의 신세로 전락, 권력의 무상함을 실감케했다.

한편 수지 김 살해사건 진범 윤태식씨가 전격 구속되면서 이무영 전 경찰청장과 김승일 전 국정원 대공수사국장이 지난해 사건진상을 은폐한 혐의로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유탄맞은 인사들

'4대 게이트'는 출발부터 정권 실세의 개입설이 끊이지 않았다.여기에는 게이트 주인공들의 침소봉대도 한몫을 했지만 실제 친분관계도 상당수 드러나 당사자들이 곤욕을 치뤘다.

사건의 성격상 호남 출신 정·관계 인사들이 주를 이룬 이들 당사자들은 때로는 구구절절한 해명으로 때로는 민·형사 고소라는 정면대결로 무고함을 호소하기에 바빴다.

게이트마다 거명된 김홍일 의원은 "평소 그렇게 처신하지 않았다"며 억울해했고 그의 동생 김홍업 아태제단 부이사장 역시 진승현씨의 정계 연결 통로였던 최택곤씨의 구명청탁을 받아 구설수에 올랐다.또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형택씨도 보물선 인양사업과 관련 이용호씨를 만났다 검찰조사까지 받앗다.이밖에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여권 실세들도 하나같이 의혹의 시선을 받았으나 혐의가 드러난 것은 없었다.

호남출신 고위직 검사들 역시 난을 피하지 못했다.지난해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이 진씨 구명을 위해 방문했던 사실이 알려진 신승남 검찰총장과 김대웅 서울지검장은 한동안 야당의 정치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박종렬 대검 공안부장 역시 김홍일 의원의 제주도 여름휴가에 동반했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임휘윤 고검장과 임양운 검사장,이덕선 지청장은 이용호 사건 부실수사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게이트의 불똥은 경찰과 정부 고위 관료들에게도 튀었다.허남석 총경은 사촌동생이 이용호씨 주가조작에 연루돼 감봉처분을 받았으며 윤태식 게이트와 관련해서느 경찰청 외사과 전체가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했다.남궁석,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윤태식씨가 운영하는 '패스21'을 정부지원 기업으로 지정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고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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