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의 재정통합을 놓고 여ㆍ야간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야당인 한나라당은 여당에 재정통합 시기를 늦추자고 제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건보재정 분리법안'을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단독 처리했고, 여당은 예정대로 내년 1월 1일부터 재정통합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양당이 재정통합을 유예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 그 시기를 놓고 협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어쨌건 우리 국민들의 건강을 책임질 중요한 제도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할 만하다.
우리는 이번 논쟁을 계기로 건강보험 문제의 본질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통합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많은 국민들이 실 생활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끼고 있던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을 크게 개선시켜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월급봉투에서 원천징수 당한 보험료가 아까워 감기만 걸려도 종합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물어보자. 통합으로 단 1분의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실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나.
또는 그 서비스의 질이 눈에 띠게 개선되었나. 통합여부는 그야말로 공급자적 시각의 논쟁에 불과했었을 지모른다.
재정통합은 여기에 한가지 문제를 덧붙인다. 즉 정부의 재분배 정책이 당초의 목적과는 달리 부유층과 최빈곤층의 희생을 바탕으로 해서 정치적으로 발언권이 강한 중산층의 부를 늘려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조지 스티글러(GeorgeStigler)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디렉터의 법칙(Director's Law of IncomeRedistribution)'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정작 재분배의 수혜자가 되어야 할 계층은 정치적 영향력이 약하여, 재분배를 둘러싼 경쟁에서도 작은 몫밖에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의 다소와 무관하게, 세금은 걷기 쉬운 곳에서 걷게 되며 그 혜택은 걷기 어려운 쪽에서 받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평균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직장조합의적립금이 평균소득이 더 높은 지역조합을 위해 쓰이는 것도 이러한 법칙의 일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언뜻 보면 재정통합의 백지화로 최소한 '디렉터의 법칙'을 해결할 수 있을 듯 보일 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건강보험이 '노령화'라는 파고에 적응할 수 없어 재정난이 지속된다면, 여전히 우리의 직장 근로자들은 결국 다른 세금부담 등을 통해 지역가입자들을 부양하게 될 것이다.
과거 조합방식 하에서도 지역조합들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왔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그 보조금에 필요한 재원 중 상당부분은 직장근로자들의 유리알지갑에서 나왔을 것이라는 점을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따라서 재정분리가 문제를 푸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우리에게 있어 더욱 중요한 일은 보다 유연하고 지속 가능한(sustainable)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재정분리니 하는 등의 조치가 비로소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상(理想)적인 제도를 사전적으로 고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각종 규제를 없애고 다양한 종류의 민간의료보험을 허용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험은 참고할 만하다.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로 의료서비스의 질이 개선되고 있으며,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의료보험의 재정부담 역시 적어지고 있다.
반면에 우리가통합을 추진하면서 이상적인 모델로 삼았던 대만의 의료보험제도는 최근 몇 년간 재정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맥킨지 컨설팅사는 그 이유로 보험료수입에 비해 보험급여(benefit)의 지나친 확대와, 의료서비스 공급자의 효율성 상실을 꼽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인식한 대만의 총통 천수이볜은 2000년 7월 국민의료제도(National Health System)의 개혁을 위한 태스크 포스를 구성하여 보험재정안정을 위한정책들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대안 없이 적용되는 미시적인 세부 안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우리가 그냥 넘기기 힘든 대목들이다.
/권오성 자유기업원 공공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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