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가 되어 알라의 품에 안기기 위해 자살하겠다.”9ㆍ11 미국 동시다발 테러의 행동대장격인 모하마드 아타가 범행 전 보스턴 로건 공항에 남긴 짐에서 발견된 일종의 유서이다. 그는 1996년 써둔 이 자살 결행서를 부적처럼 간직하고 있었다.그리고 5년 뒤 그와 18명의 동료들은 납치한 민간 항공기를 폭탄으로 삼아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했다. 아랍계 테러리스트들이 조종간을 잡은 피랍 여객기가 9월 11일 오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를 충돌한 순간을 지켜보는 세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후에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들의 자살 충돌은 순교였다. 미국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친 과격 무슬림에게 5년을 지속해온 아타의 자살 결의는 이교도로부터 이슬람을 지켜 내기 위한 신앙의 충실한 실천이었다.
하지만 사망ㆍ실종자만 2,900명에 이르는 참극을 당한 미국에게 그들의 행동은 죽음의 광기였을 뿐이다. 여객기 승객의 생명을 도구 삼아 수천명의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킨 테러의 무모함과 잔인함에 대해 세계 시민들의 공분도 이어졌다. 그것은 누구나 테러의 재물이 될 수 있다는 분노와 공포와 전율에서 우러나는 일체감의 표시이기도 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자살 테러의 목표는 미국이지만 그 상처는 전세계가 입었다”고 역설했다.
9ㆍ11 테러는 침묵의 테러였다.
자살 테러범들은 명분을 알리는 성명도, 주의를 끌만한 주장도 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언의 광기는 21세기의 첫해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사상 처음 본토를 공격 당한 유일 초강대국 미국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전세계를 향해 미국 편에 설 것인가, 테러리스트편에 설 것인가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테러범들을 물리력으로 분쇄하겠다는 미국의 또 다른 오만이 빈 라덴을 손님으로 맞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테러와 그에 대한 보복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서도 빈발했다.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하이파 등지의 피자가게, 쇼핑가,버스안을 가리지 않고 다수가 모인 곳이면 자살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이스라엘은 즉각 미사일까지 동원,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을 맹폭, 무고한 어린이를 포함 숱한 민간인의 생명을 유린했다. 또 체첸, 아일랜드, 그루지아, 콜롬비아, 인도, 필리핀 등에서도 테러리스트들은 꼬리를 물고 복수심을 불태웠다.
자살 테러범들은 우리에게 그 행위의 절망적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세계의 지성들은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가 소수 과격분자들의 야만적 행동인가, 거대한 문명적 배후를 가진 세력충돌인가를 설명하려고 한다.
또 미국 주도의 세계화에 따른 빈곤과 불평등, 상대적 박탈감을 테러리즘의 뿌리로 짚어내고 있다. 1등을 하지만 취직할 희망이 없어 헤즈불라 전사가 되고 싶다는 팔레스타인 소년의 절규야 말로 테러리즘이 자라는 토양을 이룬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최근 이슬람 국가에서는 아기 이름을 오사마라고 짓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빈곤과 불평등의 구조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따르지 않는 한 오사마 빈 라덴을 추종하는 테러리스트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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