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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보기관 그늘진 역사 파헤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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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보기관 그늘진 역사 파헤쳐야

입력
2001.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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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19일 새벽 서울대 법대 교수 최종길씨가 중앙정보부 남산분실에서 자신이 북한 간첩임을 자백하고 양심의 가책을 못이겨 투신 자살했다는 보도가 준 충격은 유신치하에서 대학생활을 보낸 우리 세대에게 아직도 생생하다.1972년 10월 17일 유신체제가 선포된 지 일년 뒤의 사건이었다.

내가 아는 한 유신이란 용어의 기원은 시경(詩經)에서 시작된다.

황제가 백성들과 더불어 날로 새롭게 하겠다는 의미로, 변혁을 이야기하되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전제 군주이지 백성이 아니다.

근대 일본의 메이지유신 역시 천황의 왕정을 복고한다는 의미에서 명목상으로 천황이 앞으로 있을 정치변혁의 주체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난징에서 친일괴뢰정권을 세운 왕징웨이도 중화민국 유신정부라는 호칭을 썼다.

동아시아의 역사상 출현한 유신이란 용어는 이를테면 황제나 소수 지배층이 주체가 되어 변혁을 지도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적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3공에서 선포한 유신이란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단순화시키자면 국민의 투표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없애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급조된 기구가 대통령을 뽑게 만든 것이다.

잦은 선거는 정국을 불안하게 하여 개발에 불리하다는 소위 개발독재의 논리가 깔려 있다. 그러나 실상인즉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가능성이 엿보이자 그 싹을 잘라내려는 의도였다.

정권교체를 원천 봉쇄한 유신은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발전해온 국민주권의 확대라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행위였다.

1915년 중국에서도 위안스카이가 중국은 오랜 세월 전제군주가 지배해왔는데 갑자기 공화정으로 돌아가니 정국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황제가 필요하다는 제제(帝政)운동을 하다가 실패한 일이 있다. 중국의 제제운동과 한국의 유신을 같은 저울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는 시도란 점에선 동질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러면 왜 한국의 유신은 일시적이나마 성공을 거두었는가?

두 말할 것도 없이 국민을 공포로 압도하는 정보정치의 발전이 독재권력을 뒷받침해준 때문이다.

유신체제 선포 후 반대세력의 선봉인대학은 휴교가 선포되고 캠퍼스는 탱크가 주둔하는 병영이 되었다.

1973년의 1학기는 온전하게 수업을 받는 신기록을 세운 학기가 되었다. 그러나 다음 학기가 시작되고 캠퍼스에 정보과 형사가 상주하는 삼엄한 상황에서도 10월 초 서울대 문리대에서 유신철폐의 시위가 시작되었다.

독재타도 몇 마디 부르짖은 학생들이 붙잡혀가 구류를 살고 배후로 지목된 학생들은 모진 구타 끝에 구속되었다.

구속학생 석방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수업거부와 과제물 거부가 들불처럼 번져갔다.

구속된 학생들이 풀려나고 이제는 유신체제에 대한 반대 한 마디만 해도 긴급조치에 걸려 최하 15년의 징역을 살리겠다는 긴급조치의 시대로 들어갔다.

바로 이와 같이 대학가의 반독재투쟁 열기가 고조되어가던 한편에서 최종길 교수는 간첩단 연루혐의로 조사를 받다가 죽어간 것이다.

5공 말기에 박종철군이 물고문 끝에 죽었듯이 최교수가 타살되었으리란 심증은 컸다.

그러나 최교수의 사망소식과 간첩단 사건의 보도는 반독재진영의 사람들을 위축시키는 공포감을 유발하였다.

이를테면 최교수의 죽음은 유신체제를 지탱하는 공포감의 확산에 이용된 것이다. 유신체제는 이러한 공포정치에 뒷받침되었고 그 주역은 현 국정원의 전신인 중정(중앙정보부)이었다.

억울한 죽음이 어디 최교수 한사람 뿐인가. 수지 김 사건은 물론이고 수많은 의문사 사건이 있다. 국익이라는 명분하에 은폐된 정보기관의 그늘진 역사가 파헤쳐져야 한다. 국민 전체를 공포의 볼모로 삼는 개발지상주의의 세상에서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윤혜영 한성대 역사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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