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집에서 종종 쓰는 명리공휴(名利共休)라는 말이 있다.깨침의 길로 인도하는 화두(話頭)의 하나인데 한국월드컵축구대회 조직위원회의 정몽준(鄭夢準)-이연택(李衍澤), 두 공동위원장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문득 이 화두가 떠올랐다.
다행히 두 위원장의 갈등은 24일 조직위 정관을 개정, 운영체제를 사무총장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일단 수습 단계로 접어들었다.
명리는 명문이양(名聞利養)의 줄인 말이다.
명문은 명예가 세상에 널리 퍼지는 것이고 이양은 재물을 탐하는 행위이다.
명예와 재물을 추구하는 욕망은 누구나 갖고 있다. 명리 때문에 싸우고 고통을 받는다. 결국에는 명리의 노예가 돼 자신을 망치게 된다.
명리공휴는 명문이양의 상대적인 말로 명예와 재물을 모두 버린다는 뜻이다. 수행자들은 자기를 포함, 모든 것을 버리는 삶을 위해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그런 삶을 살기는 물론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같은 마음가짐을 티끌만큼이라고 갖고 있다면 세상은 한결 나아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과연 두 위원장은 무엇을 위해, 그리고 누구를 위해 대립과 갈등을 그치지 못했는지 안타깝기 짝이 없다.
1996년 12월 이동찬(李東燦)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을 초대위원장으로 해 출범한 한국월드컵 조직위는 박세직(朴世直ㆍ2대)위원장을 거쳐 지난해 10월초 정-이 공동위원장(3대) 체제를 맞이했다.
공동위원장 체제는 박 위원장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물러난 뒤 2개월에 걸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겸 수석부위원장의 위원장대행 기간에 공론화됐다.
공론화 당시부터 대다수 언론은 권한과 책임의 모호함을 들어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위원장 체제가 가동되자 가능한 한 비판을 자제했다.
인격과 경륜을 두루 갖춘 것으로 알려진 두 위원장이 '자기를 버리고' 화합을 이뤄 조직위를 이끌어가길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월드컵의 성공은 결코 어느 특정인의 노력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국민의 염원이 결집돼야 비로소 대회는 성공적으로 치러진다.
당연히 월드컵이 창출하는 영광과 환희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그러나 월드컵이 가져다 줄 명예가 눈앞을 가렸는지 두 위원장은 끝내 국민의 여망을 외면했다.
대회개막(내년 5월31일)까지는 꼭 145일을 남겨 두고 있다.
문동후(文東厚)사무총장 중심으로 바뀐 조직위가 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비상임으로 물러난 두 위원장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두 위원장의 역할은 다른데 있지 않다. 바로 문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두 위원장의 갈등이 계속되는 동안 마음고생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문 총장이라고 조직위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이제야 말로 두 위원장이 자기를 버리고 드러냄 없이 조직위와 문 총장을 도와야 할 때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둘이손을 잡고 함께 가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두 사람이 동행(同行)이 될 때 아무런 뒤얽힘이 없이 마음과 마음이 합쳐진 따뜻함이 느껴질 것이다. 진정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이기창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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