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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높은 분들의 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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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높은 분들의 행차

입력
2001.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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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님 오신다니까 자료 빨리 준비해.""A4용지로 만들까요, 큼직하게 B4용지로 할까요?"

국민은행 대전 둔산지점 권총 살인강도사건이 발생한 바로 다음날인 22일 오전.

수사본부가 차려진 대전 둔산경찰서 2층 회의실은 엽기적인 사건의 수사지휘부 답게 긴박한 분위기 속에 전 직원과 간부가 수사팀으로부터 들어오는 수사상황을 분석하고 수사지시를 내리느라 무척 분주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처로부터 이근식(李根植) 행정자치부 장관이 방문할 테니 준비하라는 연락이 왔고, 직원들은 수사에서 손을 떼고 인상을 찌푸리며 보고 자료를 준비했다.

이 장관은 직원들이 피곤한 심신을 이끌고 수시간동안 정리한 보고자료를 한번 훑어 보고 "자리를 걸고 빨리 범인을 검거하라"고 큰소리 친 뒤 15분 여만에 자리를 떴다.

경관들은 사진기자들을 의식한 듯 '범인 검거'란 부분에선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지만, 이 장관의 뒤꼭지를 바라보는 표정에는 못마땅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높은 분들'의 수사본부 방문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본부측의 요청에 따라 취재기자들도 출입을 삼가했지만, 대전시장과 충남도지사가 들렀고 민주당과 자민련 대전시지부장 등도 줄을 이었다.

이때 마다 수사본부는 업무가 중단됐다. "이번 사건의 범인들은 프로예요. 빼앗은 경찰 권총으로 버젓이 범행을 했고, 흔적도 전혀 남기지 않았어요. 24시간을 뛰 쫓아도 어려울 것 같은 데…."

한 경관은 "높은 분들의 방문은 오히려 수사방해"라며 손을 내 저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눈 좀 붙이게 해 주세요."

수사본부 직원들은 높은 분들과의 또 다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성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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