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한테 잘 할게요.” 억센 경상도사투리로 내뱉은 말 한마디에 억관(조재현)의 인생은 저당잡혀버렸다.SBS 드라마스페셜 ‘피아노’(극본 김규완, 연출 오종록)에서는 3류로도 조직에 끼어들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는 깡패가 아버지 노릇을 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졌다.
모자이크처럼 조각조각으로 이뤄져 있으면서도 그나마 조각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억관네 가정. 수아와 경호는 친어머니를 앗아간 의붓아버지를 인정하기도 힘들고 그에 대한 분노를 삭이기도 힘들다.
그리고 죄책감에 억관은 무작정 희생을 하고 본다. 독사로부터 경호를 보호하기 위해 대신해서 ‘온몸 뿌사지도록’ 몰매를 맞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응답도 하지 않는 수아의 등에 대고 “수아야, 다음에는 밥도 묵고 가라. 잠도 자고 가라”며 소리친다.
배다른 남매간의 사랑과 조폭 등 TV드라마가 수용하기 어려운 소재들을 끼워 맞춘 ‘피아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억관의 희생적인 부성애.
‘아버지’를 전면에 부각시켰던 드라마들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아버지’를 그렸던 ‘아버지와 아들’(SBS)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KBS)는 맥을 추지 못했다.
시청률 30%에 가까이 다가선 ‘피아노’의 성공은 이런 드라마와는 차별적인 부성애를 표현했기 때문.
억관의 내리사랑은 외피는 부성애나 내피는 모성애다. 억관에게서는 아버지다운 권위나 가부장으로서의 부담은 없다.
대신 어머니의 빈 자리를 메워주는 아버지라기보다는 희생적인 어머니의 전형을 표현하고 있다.
매회 등장하는 조폭들은 역시 폭력을 사용하고 억관의 주변인물들은 드라마의 중심축인 가족의 갈등과 상관없이 코믹하다.
각목을 휘둘러도 직접 인물에 각목을 내리찍는 장면을 피하는 등 폭력장면을 기술적으로 처리했으나 폭력에 과도하게 노출돼있다.
‘피아노’가 이 같은 단점을 상쇄할 만한 어떤 매력을 지녔을까. 현실에서는 절대 존재할것 같지 않은 과장된 부성애를 그럴 듯하게 그려내는 조재현이 ‘피아노’의 최대 장점인 셈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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