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월드컵조직위원회 정몽준-이연택 공동위원장의 갈등이 표면화됐을 때 가장마음이 괴로웠던 사람은 문동후 사무총장이었다. 24일 조직위의 정관변경에 따라 두 공동위원장이 업무 일선에서 물러나고 자신이 조직위의 실질적인책임을 맡게 됐을 때도 역시 마음이 편치 못했다.두 위원장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 이런 결과가 빚어졌다는 자책감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문 총장은크리스마스 휴일인 25일 인터뷰 요청을 받고 아주 난감해 했다. 여러 차례 부탁 끝에 성남시 분당 자택에서 어렵게 만났다.
-최근 갈등이 공론화 되었을 때 심정이 어땠습니까. 이제 두 위원장의 갈등은해소된 것입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할까요. 그러나 조그만 문제가 크게 증폭된 경우도 많았습니다.아무튼 두 분의 갈등문제는 해결됐다고 봅니다. (언론에서는 의전과 주도권문제라고 하는데) 두 분의 갈등은 사회적 경륜이 워낙 높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두 분이 업무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 실질적 업무에 관여하지는 않게됐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그 분들의 의견을 수렴해 처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 총장은 이 대목서 지지부진하던 로컬 서플라이어(한국조직위 스폰서) 확보문제가마지막에 목표를 달성한 것도 두 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뛴 덕분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 2월 ISL의 파산으로 입장권 인터넷판매에 차질이 생겼을때 한국이 독자적인 인터넷 판매를 추진하게 된 것도 두 위원장의 노력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중요한 문제 해결은 두 위원장의 도움이 절대적이라고 설명했다.
-실질적인 조직위의 책임자가 된 소감은 어떻습니까.
“일본도 사무총장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의미를찾으려 합니다. 그동안 여러 문제로 조직위 직원들이 피곤했습니다. 앞으로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일하도록 만들겠습니다.(월드컵이란) 축제를 준비하는데 마음이 무거워서야 되겠습니까.”
-공무원으로서 철학은 무엇입니까. 조직위 직원들에게 무엇을 강조합니까.
“(철학이라기 보다)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습니다. 88서울올림픽 때 단거리여왕 그리피스 조이너가 우승한 뒤 트랙에 엎드려 키스하고 기도를올리는 장면을 보고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기자는 조이너였지만 그 장을 (내가) 만들었다는 뿌듯함을 느꼈습니다(문 총장은88올림픽 때 경기국장으로 재직했다). 직원들에게도 월드컵 때 그런 보람을 느껴보자고 격려합니다.”
문총장의 인품과 업무처리 능력은 조직위와 반목관계인 축구협회 임원들도 인정한다.또 공직자 재산등록을 책임졌던 총무처 복무감사관 시절의 업무처리 능력은 완벽하다는 평을 받았다.
-사무총장을 맡은지 1년이 됐습니다. 그 동안 어려웠던 점은 없습니까.
“최근 상품화권자인CCP 코리아가 제 역할을 못해 국제축구연맹(FIFA)를 설득해서 사업자를 새로 바꾼 것 등 몇 가지를 제외하면 큰 부분에서는 없습니다. 지난해 부임했을 때와 달라진 점은 경기장도 완성됐고 컨페더레이션스컵과 각종 A매치를 통해 조직위와 개최도시 직원들이 월드컵 수준의 경기경험을 해 자신감도생겼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입니까.
“대회가 다가오면 본부는 대회운영조직으로 개편됩니다. 세밀한 계획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정교한 시스템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3월부터 각 경기장에 종합안내소, 파출소,개표소 등이 설치됩니다. 이 역시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10개 경기장에 동일한 개념과 이미지로 설치돼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본선 때 숙박과수용 수요를 정확히 예측, 대처하는 것입니다. 성공적인 대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유승근 기자
■서울올림픽때 순발력 金2 추가 기여
문동후 총장은 업무처리 능력과 순발력이 아주 뛰어나다. 서울올림픽 당시 한국의금메달 10개중 2개는 당시 경기국장이었던 그의 순발력 덕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올림픽 개막 3~4년전부터 국제수영연맹은 남녀 50m를 정식종목으로 추가하자고요청해왔다. 그러나 우리에게 크게 도움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 문 총장은 “선수촌 사정상불가능하다”며 발을 뺐다. 국제수영연맹은 일이 안 풀리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사정했고 IOC는대회 1년전 “수영 50m를 추가하는 대신 양궁 남녀단체전을 추가하자” 는 마지막 타협안을 제시했다.
답변 하나에 금메달 몇 개가 왔다갔다 하는 짧은 순간 문 총장은 IOC와 전화를 하면서 직원에게대한양궁협회에 단체전 금메달이 가능한지를 알아보라고 메모로 지시했다.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자 문 총장은 박세직 위원장의 긴급 허가를 얻어IOC측 제안에 동의해주었다. 양궁서 남녀 개인과 단체 등 금메달 4개를 모두 싹쓸이 한 한국으로선 이 때 금메달 2개를 미리 확보한 것이다.
●문동후 총장 약력
△1949년 경북 김천생 △경북고-서울대 법대 △72년 행시12회 △총무처 사무관·88올림픽 경기국장·청와대 행정비서관·총무처 조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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