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이 1,000달러면 '빌린 사람'의 문제이지만, 1,000만달러가 되면 '꿔준 사람'의 문제가 된다는말이 있다.빌려준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다급한 입장이 180도 바뀐다는 얘기다.
1980년대 멕시코 정부가 이런 식으로 외국 채권단을 '위협'했다 한다. 외채가 눈덩이처럼 커진 멕시코 정부가 '배째라'로 나가니 채권단이 되려 '겁'을 먹을 수밖에….
최근 아르헨티나 사태가 결국 이런 꼴이 됐다. 정부자체가 파산 지경이니 빚을 못 갚겠다고 나오는 것 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엘도라도(El Dorado)'의 나라다.
한반도의 14배나 되는 광활한 대지에 풍부한 자원의 통계수치만 보더라도 행복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 나라는 지난 세기 라틴권 유럽인들이 꿈꾸는 이민선호 1순위 국가였고,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중남미의 파리'로 이름을 날렸다.
지구 반대쪽 한국에서도 한때 아르헨티나 이민 붐이 일었을 정도다. 세계 7대 경제국까지 올랐던,보석 같은 나라가 불과 수십년 만에 '패국망신'한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다.
■아르헨티나의 현대사에는 그 유명한 '페로니즘'이 있다.
20세기 페론 대통령이 국가의 물꼬를 바꾼 정책노선을 일컫는 말이다. 그가 2차 대전 중 일으킨 집권 쿠데타는 부패와 사치가 극에 달한 상류사회를 겨냥한 경제 쿠데타이기도 했다.
서민들의 열광적 박수를 받는 그의 페로니즘은 한편 재정파탄의 시발점이 된다. 복지후생 위주의 재정이 국고를 바닥내고, 이를 다시 외채로 메우는 악순환의 씨앗이다.
■페로니즘이 아르헨티나 파산의 원인(遠因)이라고 한다면, '글로벌리즘'은 근인(近因)이다.
미 하버드대 출신의 자유시장주의자가 경제사령탑에 올라 세계화의 파도를 끌어들이면서 여러 문제가 풀리는 듯 했지만 그것이 결국 화근이 됐다.
외국자본의 단맛에 개혁은 뒷전에 밀리고 끝내 나라가 뒤집어진 것이다. 분별없는 세계화의 '급체'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르헨티나는 말해준다.
이번에 '역(逆)쿠데타'를 일으킨 국민들은 '아르헨티나여 울지 말아요'를 다시 부르고 있을지 모른다.
송태권 논설위원
songt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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