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ㆍ예술 강좌가 인기를 끌고 있다.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밤에도 서울 종로구 인사동 철학아카데미(원장 이정우) 교실에서는 진지한 철학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밤 9시께 막 강의를 마친 강사 진중권씨가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이 곳에 온 여러분이 한심하다”고 불쑥 한마디 던지자 교실을 가득 메운 학생 80여 명이 ‘와!’ 하고 웃었다.
회사원, 주부, 대학생 등 다양한 학생들의 모습은 생기가 넘치고 즐거워 보였다.
주부 이계희(50)씨는 “혼신의 힘을 다해 강의하는 선생님들에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라며 “겨울엔 춥고 여름에 덥지만 이 곳이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아웃사이더 지식인으로 유명한 강사 진중권씨는 지난 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철학아카데미에서 강의하고 있다.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미학의 역사를 8주 동안 가르칠 예정. 수강료는 1주에 1만원 꼴인 8만원이다.
그의 강의는 대학원생 수준으로 강의 후 자세한 질의응답과 토론이 이어져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 보였다.
철학아카데미는 이정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와 재야 철학자 조광제씨 등 4명이 ‘철학에 대한 대중적 갈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지난해 출범시킨 ‘대안철학학교’이다.
“제도권 철학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목표를 내건 철학아카데미는 구체적인 작업으로서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강좌를 마련해 대중과 만나고 있다.
이번 겨울에는 진씨의 강의를 비롯해 이정우씨의 ‘현대 서양철학의 파노라마’, 홍준기씨의 ‘프로이드ㆍ라캉 정신분석학’, 김상봉씨의 ‘칸트에서 헤겔까지’ 등 20개 강좌가 진행 중이다. (02)722-2870
‘대안적 문화예술 강좌’를 표방하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문예아카데미(교장 김상봉)도 내년 1월 7일부터 겨울강좌를 시작한다.
철학, 미학, 비평론, 예술론 등 문화예술과 인문학 전반에 걸친 강좌와 예술 장르별 이론강좌 21개를 개설했다.
문예아카데미는 1992년 발족한 이후 지금까지 배출한 수강생만도 2만 명에 이를 만큼 탄탄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02)739-6854
지난해 서울 대학로에 자리잡은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의 인문학 강좌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 달에 회비 1만 원만 내면 각종 강좌와 세미나에 참여할 수 있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02)3673-1125.
한편 대학 교수 등 제도권 학자들의 대중 강좌도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학술협의회(이사장 김용준)는 12월부터 100여 명의 학자가 참여하는 인터넷 학술강좌를 ‘인터넷 아카넷티비(www.acanet.com)’에 개설했다.
일반인들도 한 강좌에 7,000원의 수강료를 내면 들을 수 있다. 90분짜리 강의 10개로 한 강좌를 이루는 아카넷 학술강좌는 한 강좌 당 7~8명의 학자가 강의한다.
또 서울대는 내년 9월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공개강좌를 개최할 계획이다.문학, 역사, 철학 등 40여 개 강좌를 우선 인터넷으로 개설한 뒤 오프라인으로 확대한다는 것이 학교측 생각이다.
진중권씨는 “이러한 강좌들이 인기를 모으는 것은 우리 제도권 교육의 허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불행한 현상”이라며 “그러나 여기서 어떤 가능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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