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영신. 묵은 세월을 보내고 새 시간을 맞는 의식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소란스럽고 고생스럽다. 깊이 침잠하며 내면에서 우러나는 새 시간을 맞을 수는 없을까.겨울산사를 찾자. 목탁과 독경 소리가 은은하게 울린다면 더욱 좋겠지. 천년이 넘도록 제자리를 지켜온 산 속의 고찰은 고작 1년이라는 짧은 세월의 전환점에서도 야단법석을 떠는 인간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쌍봉사(雙峰寺ㆍ전남화순군 이양면 증리)
정확한 절의 역사는 알기 어렵다. 전남 곡성군 태안사에 있는 혜철 스님 부도비에 “신라 신무왕 원년(839년)에 쌍봉사에서 여름을 보냈다”는 구절이 있어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이후 당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철감 선사가 절을 맡았다.
철감선사 밑에서 공부한 징효 대사가 강원 영월의 사자산 법흥사에서 사자산문을 일으켰으니 철감선사는 사자산문의 개조이고 쌍봉사는 그 모태가 된다.
멀리서 바라보는 쌍봉사는 볼품이 없다. 눈이라도 내려 묻히면 여염집인지 절집인지도 구분하기 힘들다.
그러나 자갈이 가득 깔린 주차장에 들어서면 실망은 서서히 사라진다. 대웅전, 극락전, 요사채, 해탈문 등 달랑 4채의 절집이 고작인데도 작지만 아름답고, 소박하지만 묵직한 위엄이 절 마당에 가득하다.
‘무릇 절이란 이래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쌍봉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양식의 대웅전. 조선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3층 목조탑 양식으로 지었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과 함께 한반도에 두 개밖에 없는 희귀한 양식이다. 1936년에 일찌감치 보물로 지정돼 관리해왔다.
단청이 유난히 짙다. 주위의 건물이 고색창연한 데 반해 새 건물이다. 아쉽게도 옛 건물은 1984년 한 신도의 부주의로 불에 탔다.
지금 건물은 86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복원한 것이다. 기단 돌에 검게 그을린 자국이있다.
쌍봉사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가장 높은 것은 절 뒤에 있다. 철감선사탑과 탑비이다. 철감 선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은 국보 제 57호, 탑비는 보물 제170호로 지정돼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도탑과 탑비로 평가받고 있다.
절마당 한 쪽 언덕으로 대숲이 있다. 사람 키의 서너 배는 됨직한 굵고 긴 대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긴 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다. 종무소(061)372-3765
■법흥사(法興寺ㆍ강원영월군 수주면)
이름그대로 불법이 흥했던 절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남한의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ㆍ불상을모시지 않고 법당만 있는 불전) 중 하나가 이 절에 있으며 옛날에 불교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이 문을 열고 위세를 떨쳤던 사찰이다.
그러나 규모는 그 위세를 느끼기 힘들 정도로 작다. 1912년 산불로 소실됐고, 1917년의 중건불사를 마치자마자 31년에는 다시 산사태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39년 적멸보궁만을 중수한 채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최근 들어 다시 옛 모습을 회복해가고 있다.
법흥사적 멸보궁은 비교적 최근에 중수돼서인지 5대 적멸보궁 중 가장 화려한 단청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운치는 떨어진다.
현판을 좌우에서 호위하고 있는 용머리 장식이나 뜰에 서 있는 한 쌍의 석등도 아직 세월의 맛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적멸보궁 뒤로는 자장율사가 기도하던 토굴이 있고 그 옆에 진신사리를 넣어왔다는 석함이 남아 있다.
다른 적멸보궁과 달리 자장율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뒷산인 사자산 어딘가에 묻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산 전체가 신앙의 대상이었다.
법흥사에서 볼 만한 것은 보물 제 612호인 징효대사비. 옆에 극락전이 있다. 사자산 자락으로 저녁 해가 넘어갈 때, 겨울숲을 배경으로 고즈넉하게 서 있는 극락전은 정갈한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가는 길이 아름답다. 영월 서강의 상류인 주천강과 길이 함께 간다. 요선암이라는 너럭바위 무리가 있다.
화강암이 억겁의 세월 물길에 깎였다. 요선암옆 절벽 위에는 요선정이라는 정자가 서 있다. 높이 7m에 이르는 온화한 미소의 석가여래좌상과 함께 주천강의 물길을 굽어본다. 종무소(033)374-9177
■선암사(仙巖寺ㆍ전남순천시 승주면 죽학리)
전남도립공원인 조계산(해발 884m)에 있는 대찰이다. 조계종 다음으로 큰 불교 종단인 태고종의 본산이다.
백제 성왕 시절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머물렀던 비로암 자리에 신라 헌강왕 5년(875년) 도선국사가 큰 절을 일으켰다고 한다.
한때 60여 동에 달했던 이 대가람은 전란과 화재를 거듭 겪고 20여 동으로 줄었지만 그 위엄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
삼층석탑(보물 제395호)과 승선교(제400호)등의 보물을 중심으로 깊이와 아름다움이 건재하다.
산반대편 기슭에는 조계종 승보(僧寶) 사찰인 송광사가 있다. 등을 대고 자리한 송광사가 번화한 반면 선암사는 고적하고 은근한 멋을 내뿜는다.
절다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특히 절에 오르는 계곡길이 아름답다. 사하촌(寺下村) 괴목마을에서 1.5㎞ 정도를 걸으면 절에 닿는다.
경사가 거의 없는 산책길이다. 자동차도 다닐 수 있지만 차로 오르면 곧 후회한다. 가지를 뒤튼 활엽수의 숲으로 길은 나아간다.
왼편의 계곡으로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에 걸음을 맞춘다.
이길은 자연이 스스로 빚은 수목원이다. 나무는 저마다 다른 모습이다. 말채나무, 이팝나무, 서어나무, 대팻집나무, 금식나무…. 이름조차 낯선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친절하게 나무마다 이름표와 소갯말을 걸어놓았다. 길 중간쯤에서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숲과 만난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직립의 아름다움. 광장과 식수대가 있고 삼나무 아래 깊은 그늘 속에 벤치가 놓여 있다. 잠시 걸음을 쉰다.
쉼터에서 조금 오르면 두 개의 돌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른다. 높은 곳에 버티고 있는 것이 조선 숙종 39년(1713년)에 만들어진 승선교(昇仙橋). 보물로서의 기품이 당당하다.
자연석을 기반으로 화강암을 무지개처럼 이어 놓았다. 300년 가까운 세월의 폭우와 급류에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바로 위에 강선루(降仙樓)가 있다. 붉은 색 기둥이 돌다리와 잘 어울린다. 종무소 (061)754-5247
■청량사(淸凉寺ㆍ경북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어느 정도 이름을 알렸지만 교통의 오지였다. 중앙고속도로의 완전 개통으로 수도권 여행객들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위세를 떨치던 큰 절이었지만 조선의 억불 정책으로 피폐했다가 최근 다시 위용을 갖추고 있다.
청량사는 유리보전이 있는 내청량과 응진전이 있는 외청량으로 나뉜다. 산길로 걸어서 약 20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약사여래불을 모시는 유리보전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으로 유명하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암자로 금탑봉이라는 아름다운 돌 절벽에 놓여 있다.
청량사참배는 이 두 절집 사이를 오가는 가벼운 산행길이다. 내친 김에 청량산 등반도 감행해 봄직하다.
청량산은 돌산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남성미를 물씬 풍긴다. 거침없이 솟아오른 바위 봉우리, 절벽에 뿌리를 박고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 아름드리 소나무….
도저히 오르지 못할 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일단 안에 들면 훈훈하다. 바위를 돌아 오르는 아기자기한 등산로도 매력적이다.
일반적인 코스는 응진전-금탑봉-경일봉-보살봉-의상봉(청량산의 주봉)을 거쳐 다시 내려오는 것. 4시간 30분에서 5시간이 걸린다.
다리를 쉴 수 있는 곳은 어풍대와 산꾼의 집. 금탑봉의 중간에 있는 어풍대는 절벽 위의 평지로 창량산 전체와 멀리 봉화 땅의 연봉을 조망할 수 있다. 눈과 가슴이 후련해지는 곳이다.
산꾼의집은 산악구조대 본부를 겸하고 있는 곳. 아홉 가지 약초를 달여낸 구청자를 공짜로 맛볼 수 있는데 근처에만 가도 구수한 차 냄새가 진동한다.
청량산관리사무소 (054)672-4994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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