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의 발길이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거리는 걷기 조차 힘들 정도다. 떠밀려 흘러가는 느낌이다.이 많은 사람들은그 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그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2001년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오후 7시 롯데백화점. 세일기간도 아닌데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선물을 고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1층 잡화점이 붐빈다.
장갑을 골라든 회사원 이나영(22ㆍ여)씨. “서로를 축복해주는 날이다. 조그마한 선물을 주고받다 보면 이 밤의 의미가 더욱 깊어진다. 이제는 사람구경을 한 뒤 분위기 있고 전망 좋은 곳에 친구와함께 찾아갈 계획이다.” 종로 보석상가도 갖가지 선물을 함께 고르는 연인들로 가득했다.
길을 건넜다. 명동이다. 울긋불긋한 조명 아래 인산인해다. 눈길을 끄는 두 가지 풍경이 있다.
구세군 자선 남비가 그 하나다. 빳빳한 지폐를 호기롭게 집어넣는 학생 김천수(19)군. 그는 옆에 있는 여자친구에게 자랑하듯 말한다.
“우리 맥주 한 잔 덜마시면 되잖아. 처음 돈을 내는 건데 기분이 좋다.” 그 옆 고무로 만든 배받이를 깔고 기어가며 구걸을 하는 장애인은 또 하나의 명동 거리 모습.
그러나 그에게는 사람들의 눈길이 돌아가지 않는다. 그 많던 인파들도 그를 슬금슬금 피해 지나간다. 그는 이 밤,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인가.
오후 11시 강남역은 이제 술 취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두운 구석마다 토악질이다. 이날 술집을 찾는 것은 바가지를 각오해야 하는일.
T주점 이모(35) 사장은 “솔직히 가격표를 따로 만들었다. 그래도 앉을 자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역시 휘황찬란한 불빛과 떼로 몰려다니는 젊은 사람들로 숨 쉬기 조차 힘들다. 1시간 30분만에 겨우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한다.
이 밤은 왜 이렇게 화려한 것일까. 외로운 솔로와 즐거움을 찾지 못했던 이들은 이 밤 무슨 꿈을 꾸며 잠들고 있을까. 여러가지 상념이 교차한다.
동네 초입의 작은 교회 마당.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찾아왔다는 예수 구유가 놓여있다. 2001년 서울의 크리스마스 이브.
그의 사랑은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 새까만 밤 하늘, 축복의 눈이 내릴 기색은 없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