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1년 12월26일 프랑스 계몽기의 철학자 엘베시위스가 56세로 작고했다. 베르사유 출신의 엘베시위스는 파리의 르그랑 학교에서 공부한 뒤 디드로, 달랑베르, 올바크 등과 친교를 맺으며 철학을 연구했다.그는 로크의 인식론과 콩디야크의 감각론을 다듬어 공리주의 윤리학을 세웠다. 백과전서파에 가담해 교회의 권위와 군주제질서를 심하게 비판해서 그의 책들이 불살라지기도 했다. 엘베시위스가 교권이나 군주제에 비판적이었던 것은 그가 디드로나 올바크 등의 친구들과 나누고 있는 기계론적 유물론의 세계관에서 보자면 당연하다.
기계론적 유물론이란 일체의 현상이 기계적 운동에 의해 생긴다고 보는 세계관이다.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나 에피큐로스가 주장한 원자론에까지 기원이 올라가는 기계론적 유물론은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사상에 독특한 색깔을 부여하며 감각론 무신론 쾌락설 공리설 등으로 가지를 뻗어나갔고, 그 과정에서 구체제나 사변적 형이상학과 신학을 이성과 과학의 이름으로 신랄하게 공격했다. 이 기계론적 유물론은 19세기 들어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해 극복됐다.
엘베시위스의 주저 ‘정신에 대하여’(1758)도 이런 기계론적 유물론에서 나온 쾌락설의 산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모든 정신활동의 근원은 감각적 쾌락의 추구와 자기애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선악의 기준을 타인의 평가에 두고 선을 공공 이익에 부합하는 행위라고 규정한 뒤 교육과 법은 개인의 이기주의와 사회복지를 일치하는 방향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엘베시위스는 프랑스인이지만, 그 이름만 보면 스위스를 연상시킨다. 고대 로마인들은 스위스를 헬베티아라고 불렀는데, 나폴레옹은 1798년에 스위스에 헬베티아공화국이라는 중앙집권적 공화국을 세운 바 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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