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明仁) 일본 천황의 한반도 혈연 언급은 한국인들의 정서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천황이 우리 지도자나 외교관들을 만날 때마다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표명해 온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사생활에서도 그는 가야 문물전과 오페라 '황진이' 관람 등으로 우리 역사 이해와 문화 감상에 많은 관심을 표명해 왔다.
그러나 자신의 혈통이 한반도와 직접 닿아 있음을 실토한 것은 큰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일본 황실이 한반도와 특별 한연(緣)을 갖고 있음은 일본 지식인들에게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으로 논의되지 않아 은밀한 상식이거나 금기, 또는 공공연한 비밀 정도로 인식되어왔다.
지식인이나 정치인이 언급해도 파장이 클 터인데, 천황 스스로 그 비밀을 떳떳하게 밝히고 나서 두 나라 인적 교류의 역사, 더 나아가 두민족의 뿌리로까지 논의를 비화시킬 토대가 마련되었다.
천황의 68회 생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나온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는 사실에 나 자신 한국과의 연을 느낀다"는 이 발언은 일본 정부와 사전에 어떤 조율도 없었다 한다.
답변자료에도 백제 또는 무령왕에 관한 언급이 없는 점으로 보아 의도적인 즉석답변으로 보인다.
정부와 궁내청 실무자들도 모르게 한반도와 황실의 혈연관계를 언급한 것은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천황이 아무리 상징적인 국가원수라고 해도, 일본인들 가슴 속에 천황이 아직 엄청난 권위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현실에 비추어 이번 발언의 정치적 함의는 엄청나다.
우리가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한일 공동 주최 2002년 월드컵이 불과 6개월 뒤로 임박한 타이밍이다.
천황은 두 차례나 월드컵을 들먹이며 그 행사가 성공해 두 나라의 상호이해와 신뢰가 깊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1998년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공식초청을 받은 그의 한국방문 의지가 각별하다고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미국 영국 중국 등을 두루 방문한 천황으로서는 한국방문으로 황실외교의 대미를 장식하고자 하는 열망도 있을 것이다.
한국과의 혈연에 관한 이번 언급이 그의 공식방한으로 직접 이어지는 계기가 될지는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불편한 관계들로 경색된 두 나라 국민감정을 순화하는 계기가 되리라는 점에서 천황의 언급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