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과학계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것이 두 단어로 통했다.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이다.생물 유전체 분석이 국내에서도 붐을 이뤘고, 줄기세포 연구는 난치병 치료에 빛을 던져 주었다. 특히 인간복제 논쟁은 원자폭탄 이후 과학기술의 사회ㆍ윤리적 책임을 심각하게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극미세 나노세계의 신비와 가능성은 온 과학 부문 저변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21세기 과학의 두 꽃봉오리가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생명공학
올해 생명공학은 화제와 논쟁은 무성한 반면 바이오벤처 투자는 전년에 비해 위축됐다. 실질적 산업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동물 체세포 복제 실패율이 높은 이유를 밝혀낸 한국생명공학연구원 한용만 박사의 연구, ㈜마크로젠의 한국인 게놈 초안 완성, 위암의 원인균인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균의 게놈 초안 완성, 김치ㆍ인삼 게놈 연구 등이 내놓을 수 있는 굵직한 성과다.
또 서울대 수의학과 황우석 교수의 동물복제 실험, 미스메디병원ㆍ마리아병원ㆍ차병원의 줄기세포 연구, 마리아병원의 체세포를 활용한 난자 제조도 생명공학 분야의 진보였다.
특히 체세포 배아복제 및 인간복제를 둘러싼 논란은 과학의 사회ㆍ윤리적 문제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이 과정에서 세계 최초의 인간복제 회사 클로나이드의 설립자로 라엘리언 무브먼트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라엘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생명복제 논란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러나 바이오벤처 투자는 뚝 떨어졌다.
한국바이오벤처기업협회는 지난해 110개사가 회원으로 참여한 반면 올해는 50여 개사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한문희 회장은 “생명공학은 정부출연 연구소의 기초ㆍ선행투자,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연계한 실용ㆍ산업화 분야로 이루어져 있다”며 “국내 600여 개 바이오벤처 중 몇 %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과감한 아웃소싱, 정부의 연구개발비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부는 앞으로 6년간 생명공학 분야에 13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중 10조 원은 업계의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것으로 현재로서는 특단의 유인책이 제시되지 않는 한 유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바이오업계의 지적이다.
▲비교유전체
밀과 쌀은 어떤 유전자의 차이로 다른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일까? 이처럼 두 생물의 유전체를 비교해 그 차이점과 기능을 밝혀내는 분야다.
동물에서는 초파리, 식물에서는 애기장대가 연구대상 생물 유전체의 비교기준으로 가장 많이 활용된다.
▲생물정보
생명공학은 정보통신기술의 기반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량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하려면 컴퓨터의 도움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명공학과 정보통신기술이 통합해 발달한 분야가 생물정보학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내년에 생물정보학을 본격적으로 다룰 바이오시스템학과를 설립할 계획이다.
▲기능유전체
유전체 연구의 근본 목적은 특정 질병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다.
어떤 생물의 게놈 초안을 토대로 게놈의 기능을 연구하는 것이 이 분야의 핵심이다.
▲프로테오믹스(proteomics)
단백질의 기능을 연구하는 단백질체학. 세포 내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단백질과 효소들의 얽힌 작용을 연구한다.
특정 단백질이 어떤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지 밝히고 또 이 단백질이 어떤 유전자의 명령을 받는 지를 추적하기 때문에 결국 유전체연구와 연관된다.
■나노기술
나노기술은 올해 과학계 전반으로 스며든 하나의 추세였다.
반도체 메모리, 스토리지(저장공간), 화장품, 배터리 연료 등으로 활용분야가 다양해지면서 ‘극미세 우주’를 지향하는 퓨전과학으로 확실한 입지를 굳힌 것이다.
나노기술에서 맨 먼저 상용화한 분야는 재료 부문. 자외선 차단용 나노재료 화장품은 이미 세계적으로 3조 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국내 기업들도 입자가 작아 효과가 뛰어난 나노 재료 화장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자동차 타이어에 탄소를 박아 윤활성을 높이고 마모를 덜어주는 타이어 코팅용 나노재료 ‘카본 블랙’도 실용화한 대표적인 나노기술 중 하나다.
많은 과학자들이 세계 컴퓨터 시장 제패를 꿈꾸며 개발 중인 차세대 반도체 메모리와 스토리지(저장공간) 분야는 아직 피지 않은 나노기술의 꽃.
국내에서도 이와 관련된 수많은 기초 성과들이 나왔다. 포항공대 김광수 교수팀은 0.4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 분의 1m)로 세계에서 가장 가늘고 집적도가 높은 은(銀) 나노선(線)을, 서울대 현택환 교수는 균일한 나노자성체를 만들어 내는 데성공했다.
또 삼성종합기술원 최원봉 박사팀은 차세대 메모리로 꼽히는 탄소나노튜브를 상용화할 길을 열었다.
한국은 메모리나 스토리지부문에서는 뛰어난 편이지만 상용화된 재료 부문의 경쟁력은 상당히 뒤처져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나노기술 회사 나노페이스는 지난해 수익의 절반에 가까운 400만 달러(약 52억원)를 나노 제품 판매로 벌었다.
중국도 상하이를 중심으로 400여 개의 나노 벤처가 나노붐을 일으키고 있다.
반면 국내 나노벤처는 35개 정도. 최근 통계에 따르면 연간매출이 평균 16억8,000만원인 이들 벤처 가운데 90%는 정작 나노기술 관련 매출은 3억 원 미만인 수준이다.
▲탄소나노튜브
10년 전 일본 NEC의 연구원이 우연히 발견한 탄소나노튜브는 최대직경이 수십 나노미터에 불과하면서도 강도는 강철의 100배, 전기전도도는 구리와 동일하다.
초소형 전자제품과 컴퓨터 시장을 주도할 미래형 반도체다. 기술상의 장벽이 하나 둘 허물어지고 있지만 본격 상용화는 1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노자성체
탄소나노튜브가 반도체 메모리 분야를 겨냥한다면 나노자성체는 스토리지 분야를 책임진다.
손톱만한 디스켓에 수백만 장의 문서를 저장할 수 있는 분야로 자성(磁性)을 띤 나노입자들을 촘촘히 집적해서 만든다.
입자가 자성을 띄지 않을 때는 0, 전기가 통해 자성을 띄면 1이 되어 정보를 저장한다. 자성을 가진 입자의 최소 크기는 현재 10나노미터 정도이다.
▲나노재료
배터리에 어떤 물질을 넣으면 배터리를 오랫동안 쓸 수 있을까? 이처럼 산업화가 용이한 새 나노화합물을 만들어내는 분야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유 룡 교수팀은 연료전지의 효율을 10배 이상 높일 수 있는 ‘탄소 나노물질’을 개발했다.
이진희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