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여행한 지 8년, 한국어를 배운 지 6년, 한국에 유학 온 지 4년이 되어 간다. 지리학을 전공하는 나는 한국의 배낭여행을 거듭하면서 마치 연인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이 땅에 푹 빠졌다.나라 땅 구석구석 뻗은 산줄기와 물줄기가 이루어낸 아름다운 강산. 산허리에 뭉쳐 서로 의지하며 아기자기한 살림을 꾸려가는 마을들.
나 같은 외지인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시골의 어른들. 이렇게 신기한 체험을 내게 안겨준 이 강산은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는 '고향'그 자체였다.
나는 1997년 '한국 땅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유학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 곳에 와서 만난 교수님, 선배, 동기들은 모두 '답사'라는 이름으로 한국지리를 더욱 깊이 알려고 열심이었고 모두 '한국지리 광(狂)'인 나를 환영하고 동지로 여겨 주었다.
학교 안팎에서 한국 땅에 대해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태백산맥 소백산맥과 같은 산맥의 명칭이 과거 일본인이 지질학적 근거에서 만들어낸 허구이며 이 나라의 전통적인 산줄기 개념은 '백두대간' 을 위시한 능선 개념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산맥 뿐만이 아니라 현재 군ㆍ면ㆍ리와 같은 행정구역과 지명 체계도 한국 고유의 지명을 일본인이 자신들의 지리적 개념으로 바꿔치기해 현재까지 복원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알고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전통지리 복원에 애쓰는 선배들, 특히 이 같은 사실을 가르쳐 주신 전통지리의 스승 故 이우형 선생님의 노력에 감복한 나는 이후 일본인으로서 "무언가 환원하고 싶다", "전통지리 사상 복원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본에서도 옛길 걷기를 좋아했던 나는 최영준 교수님의 '영남대로'를 읽고 한국에도 옛 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옛길 답사와 복원에 열을 올렸고 지도와 자료를 들고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의주대로와 같은 조선시대의 '과거(科擧)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풀에 파묻힌 고갯길, 폐가로 남아 있는 주막집을 세세히 기록하면서 전국을 떠돌아 다니며 과거길에 대한 애정은 나날이 커져 갔다.
옛길을 가며 길벗으로서 만나게 된 지금의 아내와도 평생 한국 땅과 함께 '신토불이'가 되어 옛길의 답사와 복원을 '인생의 과제'로 삼고 살아가자고 맹세했다.
나는 이러한 나의 결심이 내 인생의 낙(樂)인 동시에 옛 침략자의 자손이 할 수 있는 조그만 환원이라고 믿고 있다.
교수님을 비롯한 학형 등 많은 분들도 내 희망을 환영하고 많은 도움을 주신다. 그 덕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종종 신문이나 웹사이트에서 소수이기는 하지만 국내여행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외국인이 왜 우리 고유의 것에 관심을 갖나'라는 식으로 비판하거나 '외국인이 왜 우리의 옛길에 대한 연구를 선점하려 하나'라는 지적을 할 때마다 너무 속상하다.
이제껏 한국을 사랑하고 이 땅에서 희망차게 살아 온 모든 생활 자체를 부정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 학과의 어느 선배는 도쿄대학에 유학해서 도쿄 수도권의 발전과정에 대해서 새 이론을 새우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각계에서 칭찬은 받았지만 '왜 한국인이 우리 일본 것을…'이라는 반발은 없었다고 한다.
또 수많은 한국인 학생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지만 그곳에서 미국지리에 대해 깊이 공부했다는 이유로 미국사회에서 비난 받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학교에서는 모든 분이 전폭적으로 도와주고 응원해 줘서 다행이지만 나뿐만 아니라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과 평생을 같이 하려는 외국인에게 '한국을 사랑할 권리'를 보장해 주었으면 한다.
/도도로키 히로시 일본인 서울대 지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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