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 아르헨티나 임시 대통령 내정자가 21일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급유예)을 언급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디폴트(채무불이행)이 기정사실로 굳어졌다.내년 3월 대통령 선거 전까지 국가 위기 해결을 책임진 사아 대통령 내정자는 선거 이전까지 외채 원금과 이자 지급을 동결하는 한편 긴축 재정, 극빈층 지원 등 경제 회생 방안을 광범위하게 도입할 전망이다.
하지만 쫓겨난 페르난도 데 라 루아 전 대통령의 재정 긴축에 제동을걸었던 집권 페론(정의)당이 국제 요구에 부합하게 재정을 운용할지 미지수며 앞으로 실시될 대선이 사회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3년간 채무 유예로 위기 수습
사아 대통령 내정자는 이날 “외채에 대해 원금과 이자 지불을 즉각 중지하는 데 찬성한다”며 취임 후 디폴트 선언을 강력히 시사했다. 하지만 발표 시기는 취임 직후가 아니라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루어질 것이라고 루벤 마린 페론당 부총재가 말했다.
현지 언론들은모라토리엄이 최소 내년 대선 이후 새 정부의 채무 재조정 작업 개시 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보도했으며 분석가들은 아르헨티나가 3년 간 채무 유예를채권 기관들에 요청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임시 정부는 이 밖에도 현재 한 달에 1,000 페소 이상 인출을 금지토록 한 규제를 완화하고세금 감면과 식량 지원 등 서민 대상의 민생 안정 대책도 시행할 방침이다.
페소화를 달러화에 고정시킨 태환제도의 철폐나 페소화 평가절하 등 또 다른 위기해결책도 거론되고 있으나 시행이 유보되거나 적어도 디폴트 선언 이후 시간을 두고 도입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사아 대통령 내정자는 “조만간 발표될 경제 회생책에서 페소화를 평가절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페론당 주변에서도 태환제 고수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페소화 평가 절하는 부동산 담보대출 등 대부분 달러화로 이루어지는 민간의 주요 대출금 상환 부담을주는 부작용 때문에 신중히 검토되고 있다.
▽불투명한 향후 정국
원내 다수당인 페론당은 카를로스 메넴 정권 이후 2년여 만에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아르헨티나 국정을 조속히 안정시킬 수 있을 지는 불확실하다. 페론당은 내년 3월 3일까지 사아 임시 대통령 체제를 유지한 뒤 대선을 실시하고, 새 대통령에게 국정 안정을 위한 조기 총선 실시권을 부여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급진당 등 소수 정당들은 사회 혼란 가중 등을 이유로 이에 반대해 상당기간 정치권 불안을 계속될 전망이다. 경제 문제에서도 페론당은 전통적으로 노동자 권익을 앞세우는 인기 위주의 정책에 익숙하다는 한계를 가진 데다위기 해법을 두고 내부 이론도 적지 않아 선뜻 묘책이 나올 지는 미지수다.
한편 내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던 메넴 전 대통령이 불출마를 시사하고 있어 사아 대통령 내정자가 이번 사태를 수습할 전기를 마련한다면 데 라 루아 전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을 채울 새 대통령에 선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주말을 지나면서 일부 지역에 대한 비상 사태 재선포를 제외하면 치안이 정상을 찾아가고 있다. 노조의 총파업도 철회됐고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 교통도 정상 운행에 들어갔다. 거의 일주일 간 계속된 소요 사태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주에서만 11명이 숨지는 등 아르헨티나 전국에서 28명이 사망하고 500여 명이 부상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아르헨티나 법원은 21일데 라 루아 전 대통령에 대해 시위 진압 과정 수사를 이유로 출국금지 조치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사아 임시대통령
내년 3월 3일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아돌포 로드리게스 사아(54) 아르헨티나 임시 대통령은 흑자재정을 이룩한 2개주 중 하나인 산후안주(州)의 주지사.
18년 동안 재임하면서 광산업에 의존하던 낙후된 주 경제구조를 근대화로 탈바꿈 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수로사업과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시설 확충에서 많은 발전을 이뤄 실업률과 부의 편차를 없애는 데 상당한 업적을 이뤘다.
제 1당인 페론당 소속인 그는 1940년대 포퓰리즘 바람을 업고 아르헨티나를 통치했던 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의 추종자라는 이력을 갖고 있으나, 1983년 군사정권 붕괴 직후 36세의 나이에 주지사로 처음 선출된 뒤 4차례 연속 재선에 성공한 화려한 정치경력을 갖고있다.
페르난도 데 라 루아 전 대통령이 비상각료 및 주지사 회의 소집을 요구했을 때 이를 거부하고 대통령 퇴진을 주장했던 강경파이다.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극복방안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과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을 평소 소신으로 밝혀왔다.
변호사 시절 결혼, 5명의 자녀가 있으며1993년 혼외정사 성추문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의 집안은 지역 신문과 TV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과도정부의 임시 경제부 장관에는 오스카르 람베르토 페론당 상원의원이임명됐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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