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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불우이웃과 송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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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불우이웃과 송년을

입력
2001.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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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참으로 빠르다. 여름철의 호우, 가을의 낙엽을 뒤로 한 채 벌써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돌이켜 보면 올해는 참으로 많은 것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좋은 점, 나쁜 점 모두를 주고 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여름의 게릴라성 장마와 홍수는 적지 않은 이재민을 만들어 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재해를 당했는데, 금년에 역시 같은 종류의 재난을 당하는 사람이 나왔다.

홍수로 인한 이재민 발생이 반드시 천재(天災)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 보인다. 폭우 때문에 안타깝게도 70여명의 귀중한 인명을 잃었고, 19명은 '감전사'(感電死)라는 그야말로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다.

그런데도 정치권 국정원 등과 관련된 각종 '게이트'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맴돌며 서민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여론매체에서 운운하는 돈의 액수도 한두 푼이 아니고, 적어도 몇 천억이니 서민들이야 그저 놀랄 수밖에.

처음엔 "어쩌면 저럴 수가…"하다가도, 나중엔 아예 무관심해 버리는 것이 요즈음 세태인 것 같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어김없이 시간은 흘러 '뱀(巳)의 해'가 가고 '말(午)의 해'가 뛰어 오려고 준비하고 있다.

말 그대로 세밑(歲暮)이다. 조계사 앞 도로의 은행나무엔 나뭇잎이 하나도 없고, 사람들의 옷깃이 귀밑까지 올려진 지 오래다.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고, '망년회'라는 단어가 주변에 적잖이 떠돈다.

도심 사찰에 있고 주지 소임을 살다보니, 신도들이 하는 말을 '본의 아니게' 들을 때가 자주 있는데, 12월 들어서는 '망년회' 혹은 '송년모임을 했다'는 소리가 귀에 많이 들어온다.

정(情)많은 한국인들이라 그런지 유달리 '송년모임'이 많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모임에서 직장동료 고향친구들 모임까지, 한 둘이 아닌 것 같다.

조계사에서도 신도들끼리 한해를 보내는 서운함에 함께 모여 정을 두터이 하는 모습이다. 보기에 나쁘지 않다.

사람 사는 세상에 친한 사람끼리 모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서로간의 안부나 근황을 묻는 것도 지극히 정겨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음주'를 제외하곤 친한 사람들끼리의 송년모임은 참석자들은 즐겁게 만든다.

다만 올해가 얼마남지 않은 이제부터는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는 자세로 '송년모임'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주변에는 아직도 근근히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송년모임의 정신'이 이들에게 미친다면 정(情)은 더욱 빛나리라.

그리고 내년도 준비하자. 새해가 곧 다가오고, 흥청망청하는 사이 신년의 1·2월을 순식간에 흘러 보내버린 경험이 다들 있지 않은가.

불가(佛家)의 선사들은 세밑과 연초에 단순한 덕담(德談) 아닌 법담(法談)을 주고 받았다.

'경청신년(鏡淸新年)'이라는 공안이 대표적인 예다. 설날 아침 한 납자가 경청 도부스님(중국 당말 오대스님. 864∼937)에게 물었다.

"새해 첫머리에도 불법이 있습니까."

"있지."

"어떤 것이 새해 아침의 불법입니까."

"설날 아침에 복을 비느니라."

"화상께서 대답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경청이 오늘 손해를 당하였도다."

옛 선사들은 이처럼 새해에 일체중생을 위해 복을 빌었다. 우리도 세밑과 연초엔 다른 사람과 다른 존재들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보이지 않는 인연을 서로서로 맺고 살아가는 곳이 세상 아닌가. 타인을 위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인생은 항상 '가고 오는 삶'의 연속임의 명심해, 저무는 해를 잘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를 곱게 맞이하자.

지홍스님ㆍ조계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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