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생사 시장에 맡겨라"좌승희(左承喜)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시장신앙론자’다. 과거엔 정부가 경제의 신(神)이었지만 이젠 시장이 신이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전경련 부설 연구기관장으로서 그의 주장은 ‘친(親)재벌적’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친기업ㆍ친시장’에가깝다.
좌 원장은 내년 한국경제의 핵심과제 역시 “정부가 할 일과 시장이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경제는 얼마나 시장친화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장경제의 핵심은 기회의 균등과 결과의 불균등(차별화)입니다. 기회는 모든 기업에 똑같이 제공하되, 결과는 잘한 기업만 살아 남도록 하는 것이지요. 과거엔 쓸만한 몇몇 기업에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고도성장을 이뤘습니다.
결과의 불균등에는 성공한 셈이지요. 그러나 정경유착과 연고주의 관점에서 기업을 지원함으로써 기회까지불균등하게 하는 문제점을 낳았습니다.
현 정부 들어 기회의 불균등은 많이 해소됐지만, 이젠 거꾸로 결과까지 균등해지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부실기업을 질질 끌고 간 경우입니다. 잘하는 기업만 살아남게 해야 하는데 마땅히 퇴출되어야 할 기업까지 시장에 버티고 있지 않습니까. 시장이 기업을 불균등하게해야 하는데 정부가 비슷비슷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30대 집단지정제나 출자총액규제도 같은 맥락입니까.
“그렇습니다.크다는 이유로 기업을 묶어 놓음으로써 서로 균등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입니다. 획일화의 논리는 부채비율 200%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기업이 부채비율을 200%로 맞추면 시장은 기업을 무엇으로 평가하겠습니까. 그것은 은행과 투자자들이 판단해야지, 정부가 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출자총액제한을 풀면 문어발식 확장의 폐단이 있지 않나요.
“출자총액을 완화하면 악용하는 기업이 분명히생기겠지요. 하지만 그 역시 은행과 투자자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출자총액은 풀되 은행과 투자자들이 제대로 기업을 판단할 수 있도록 출자내역과 변동사항을 엄격히 공개토록 하는 게 정부의 할 일이지요. 지금은 은행과 투자자들이 할 일을 정부가 대신 하는 격입니다.”
-양적 규제는 그렇다고해도 지배구조개혁은 더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위해 사외이사를 두는것은 좋아요. 하지만 사외이사를 몇 명 둘 것인가는 기업의 경영전략 차원입니다.
지금처럼 정부가 사외이사를 몇 명이상두도록 하는 것은 정부가 직접 기업경영을 하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기업모델이란 무엇입니까.
“미국식, 일본식,유럽식 등 다양한 모델을 기업 스스로 정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정부가 특정모델을 획일적으로 강요하다 실패하면 모든 기업이 한꺼번에 망하지 않겠습니까.
다양한 구조와 모델이 공존해야 경제의 위험도 분산될 수 있지요.”
-재벌의 은행소유도 허용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재벌에 은행을 주면 사(私)금고화한다고하는데, 국내은행들은 재벌참여를 배제했어도 사금고화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제대로 된 평가없이 특정기업에 여신이 집중돼 기업과 함께 부실해진것이 바로 사금고화한 것 아닙니까.
은행장을 제대로 뽑고, 올바르게 기업을 평가토록 한다면 누가 지분을 갖느냐는 중요치 않아요. 금융개혁은 소유가 아니라 경영의 문제입니다. 공적자금 투입은행도 단순한 민유화(民有化)보다는 실질적 민영화(民營化)가 핵심입니다.”
-공적자금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공적자금은 지난 30년간의 적폐를 처리한 비용입니다. 어차피 과거 부실은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나눠 먹은 것 아닙니까.
본전 생각하면 죽여야할 기업도 못 죽이고, 쓰러뜨려야 할 은행도 못 쓰러뜨려요. 공적자금은 다 날린다는 각오로 임해야 구조조정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정치권의눈치 볼 일이 아닙니다.”
-결국은 내년 경제도 정치가 발목을 잡을 것 같은데….
“시장경제는 관치(官治)를법치(法治)로 바꾸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선법을 만드는 정치권부터 개혁되어야 합니다.
정치를 개혁하려면 좋은 정치인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우리나라 국회는 공천제 때문에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요.정치부터 시장이 작동하도록 개혁해야 합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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