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붕괴 원인.전망-새정부서도 디폴트 불가피비상사태 선포로 소요사태를 진압하려던페르난도 데 라 루아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하루만인 20일 사임한 후 대통령궁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탈출’했다. 주변을 에워싼 수만 군중은 일제히 환호하며 정권 붕괴를 자축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시련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게 외부의 시각이다. 1983년 민정 이양후 최악의 정치위기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수당인 데 라 루아 정권의 퇴진은 사회적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내핍을 강요한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지만 배경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재정긴축과 시장에서의 구조조정을 무리하게 추진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다. IMF는 가까스로 잡아맬 수 있었지만 국민의 지지를 상실하고 무너진 것이다.
이 달 중 9억달러 규모의 부채 상환 합의도 국민연금기금의 전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데 라 루아를 ‘시장’을 쫓다가 ‘국민’을 잃어버린 대통령이라는 지적이 나오는것도 이 때문이다.
BBC 방송은 앞으로 아르헨티나에는페소화 평가절하(Devaluation)와 달러로의 통화대체(Dollarization), 그리고 디폴트(Defaultㆍ채무불이행) 등 ‘3D’의 선택밖에 남겨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가운데 확실시되는 것은 디폴트 뿐이다. 1,350억달러의 외채를 지닌 아르헨티나의 채무불이행은 사상 최악의 규모가 된다.
로이터 통신은 “아르헨티나에 89년의 기적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새 정부가 출범해도 디폴트는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데 라 루아의 퇴진을 요구해 온 페론(정의)당은 21일 중 의회에서 새 대통령을 선출키로 하는 등신속하게 정권 인수에 나서고 있으나, 이 거대 야당의 내부에서 조차 난국 극복 방안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페소화를 경제 현실에맞게 평가 절하할 경우 달러 표시 부채에 대한 상환부담이 급증하고 해외투자가 일거에 빠져나갈 우려가 있다. 정부 일각에서 평가절하를 ‘집단자살’이라고 표현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대중주의를 표방해 온 페론당의 주요 기반 중 하나가 노조라는 점도 새 정권의 앞날을 불투명하게 하는 요인이다.
신 정부는 민심 안정을 위해 긴축정책을 완화하고 IMF와의 재협상에 나서는 게 불가피하다. 하지만 IMF와 미국 등 채무국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무엇보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이번 디폴트의 여파가 아르헨티나 일국으로 한정되고 97년 금융위기 당시처럼 다른 신흥시장으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기 때문이다.
IMF 등 국제기구에선 채무국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강경론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홍윤오기자
yo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