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 / "당신의 얼굴에 진실한 사랑이 깃들어지기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 / "당신의 얼굴에 진실한 사랑이 깃들어지기를"

입력
2001.12.21 00:00
0 0

*'얼굴' 조광호 글 그림, 샘터 발행성직자는 속세의 먼지로 목이 잠긴 사람들을 대신해 기도한다.

미세레레 노비스(Miserere Novis,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세상의 천 가지 얼굴을 그리는 화가 조광호(54)신부는 그 얼굴들을 대신해 통곡한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Eloi Eloi lama sabachthani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조광호 신부는 회화와 판화, 유리화, 조각 등 재료와 장르를 넘나들면서 종교적 철학적인 메시지를 표현해 온 화가이다.

조 신부가 자신이 그린 얼굴 그림과 글을 모은 책 ‘얼굴’을 펴냈다.

그가 성경에서 또 주변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다. 구약의 야곱, 천사와 성모 마리아, 사제와 시인, 상인과 노동자, 이웃여인과 친구의 얼굴이다.

얼굴은 울고 웃고 화를 내고 안타까워한다. 저마다의 사연을 담은 얼굴에는 신부의 간절한 기도가 어렸다. 천의 얼굴이 모두 진실된 사랑을 품기를.

조 신부는 130여 점의 얼굴과 함께 글을 짓는다. 신부의 메시지는 투박하고 꾸밈이 없지만 힘있게 울려 퍼진다.

신부는 순결하지 못한 세상을 정면으로 질타한다. 음식점은 늘어나고 책방은 사라져 가는 세상, 돈 앞에 무조건 복종하는 세상, 자기 편이 정당하다며 입이 닳도록 논쟁이나 하는 정치인을 저녁 뉴스 때마다 봐야 하는 세상.

신이 그토록 사랑해서 오래 참는다는 인간의 세상은 아직도 서러운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일은 먹을 것이 없어 굶는 것”이라고 흥부가 말했다던가.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다는 이 시대에 배를 곯으며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기도한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진 예수처럼 조 신부는 기도한다. 신부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는 기도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조 신부가 그린 시인의 얼굴은 외롭고 쓸쓸하다. 시는 밥을 먹여 주지도 않고 장가를 보내주지도 않고 구원을 약속하지도 않았다.

시인은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인 것처럼 슬픈 표정으로 시를 쓴다.

베로니카는 십자가를 메고 가는 예수의 피땀을 기꺼이 닦아드렸다. 예수의 고통에 동참한 베로니카의 얼굴은 아름답고 평온하다.

성직자는 연인인 신과 얼굴을 마주하게 될 날을 기다린다. 신부는 사랑하는 신을 향해 고백한다.

“죽어서 당신을 만날 때/ 나는 말하리라/ 당신 곁에 내 생애는/ 불기둥 곁에 춤추는/ 검은 그림자였노라고.”

신부는 묻는다. 거울 앞에 선 당신은 누구냐고. 교만과 허영, 위선과 탐욕, 미색의 화염과 갈등의 쌍두마차에 몸을 실은 당신은 누구냐고 묻는다.

그때 신부가 그린 얼굴은 거울이 된다. 한없이 가엾고 야속한 그 얼굴은 책을 읽는 사람의 것이기도 하다.

조광호 신부가 그린 천의 얼굴은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