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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랑은 썩고, 삶이 목 조여도 그녀들은 웃으며 노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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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사랑은 썩고, 삶이 목 조여도 그녀들은 웃으며 노래하네

입력
2001.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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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옥·김영미 새 시집한 사람이 노래한다. 사랑이 썩어간다고. 졸아들어 파들거린다고.

또 한 사람이 노래한다. 나는야 세컨드라고. 삶이 본처인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라고.

한영옥(51) 시인의 네번째 시집 ‘비천한 빠름이여’(문학동네 발행)와 김경미(42) 시인의 세번째 시집 ‘쉬잇,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 발행)에는 울면서 노래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여성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으면서 노래한다. 울면서 웃을 줄 아는 힘을 갖고 여성은 세상을 견디어 간다.

한영옥씨는 모든 사랑이 지나가 버린 사랑이 된다는 것을 안다. 지난 봄에 핀 꽃이 아름다웠다고 기억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지나가 버린 사랑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지난 사랑이 더 어지러웠다고/지난 시절로 쓰러지는 이들은/많지 않았다’(‘이번 봄’에서).

한때는 참혹할 정도로 사랑했었다. 사랑은 이마에 붉은 피딱지를 남겼다. 그 상처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랑이 벌써 썩어간다. 더 걷지도 못하고 누워 버린다.

‘벌써 사랑이 썩으며 걸어가네/ 벌써 걸음이 병들어 절룩거리네/ 그나마 더는 못 걷고…수양버들 이파리 수북한 자리에 털썩 눕네’(‘벌써 사랑이’에서).

사랑은 시간 때문에 시들어간다. 시간이 지나면 사랑은 잊혀진다. 사람들은 ‘이번 사랑만이 격랑’이라고 외친다. 그래서 시간은 비천할 정도로 빠르다.

‘지친 꽃묶음 한 구비마다 내던지고/ 비척비척 일어서는 마음의/ 비천한 관성이여/ 비천한 빠름이여.’(‘비천한 빠름이여’에서).

김경미씨에게 인생은 ‘물릴 수 없는 단 하나의 정혼자’이다. 삶의 무거운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 시인은‘세컨드’가 되기로 한다.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말 것/ 적자 생존을 믿지 말 것’(‘나는야 세컨드 1’에서).

시인은 인생의 본처로 들어앉는 것이 두렵다. 언젠가 이별할 것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면 인생의 무게는 가벼워진다.

‘설레임과 체념이 다리를 섞는, 아무리 속여도/ 끝내 넘볼 수 없는 조강지처, 그 천생연분 버티는,/ 넘보는 순간 끝장인’(나는야 세컨드 2’에서).

세컨드가 된 시인의 눈 앞에 옛 애인이 지나간다. 모든 추억들이 튀어나와 마음을 부숴 버린다.

햇빛 때문에 눈이 부신 듯 부러 손차양을 쓰고, 마주칠까 두려워 마음을 졸인다. 세컨드 시인은 아픈 가슴을 붙잡고 조그맣게 속삭인다.

‘누구도 자신만큼/ 일생을 치명적이지 않는법이니/ 타인들이여, 괜한 사랑을 우리는 했던가’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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