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 IMF(국제통화기금)에 자금을 요청한다는 내용은 발표자료에 분명히 없어…"4년전인 1997년 11월18일 재정경제원의 간부방을 돌며 열심히 귀동냥을 하던 기자는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19일로 예정된 중대발표(금융시장 안정대책)의 키포인트를 파악했다고 판단해서다.
취재기자들의 관심은 IMF행이 발표될지 여부에 쏠려있었다.
외환위기로 국가부도가 우려되고 있던 터여서 특단의 조치가 나올 것은 분명하지만 설마 제대로 된 대책을 한번도 못 내고 바로 IMF에 'SOS'를 치겠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갈피를 잡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18일은 재경원 간부들이 당시 강경식(姜慶植ㆍ신한국당 의원) 부총리가 승부수로 띄운 금융개혁법안의 국회표결처리 '지원조'로 여의도로 투입돼 자리를 비웠고, 표결처리가 무산된 이후에는 시내 모처로 점적한 상태여서 이 간부의 귀띔은 단비와 같았다.
이날 송고한 기사에는 "재경원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방안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으나 구제금융은 곧 '경제주권'의 상실을 전제로 한다는 점 때문에 채택 대상에서 일단 제외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전 언론이기자의 송고기사와 거의 비슷한 방향으로 대서특필했다.
예고기사는 적중했다. 19일 아침 전격 경질된 강 전부총리 후임으로 임명된 임창열(林昌烈)부총리(현 경기도 지사)가 금융시장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IMF지원요청을 검토할 수는 있으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안 일이지만 18일이 송고한 예고기사는 완전한 오보였다.
경제팀은 7일께부터 극비리에 IMF행을 준비, 16일에는 캉드쉬 IMF총재가 극비 방한해 한국의 IMF행과 관련한 얼개를 마련하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
이들은 19일 발표에서 IMF행을 공식자료에선 명기를 하지 않고대신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발표한다는 세부전략까지 세웠다.
따라서 IMF행을 배제하기로 했다는 예고기사는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지만 신임 임 부총리가 IMF행을 부인하면서 정확한 예고기사로 둔갑한 것이다.
기자에겐 이 둔갑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국가적으로는 재앙이 됐다. 강 전부총리가 깜작쇼 개봉에 성공했다 해도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IMF행을 약속해놓고 갑자기 변심한, 그래서 더 믿을 수 없는 나라로몰려 한 대 맞을 매를 두 대 맞는 비극을 면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IMF행 같이 중대 결정이 신구 경제수장 사이에 원활하게 전달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이유는 간단하다. 총체적인 난맥으로 국정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올해 IMF를 완전 졸업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불안하다. 권력층의 비리와 대선정국, 레임덕 현상 등 국정붕괴를 유발한 정치적 환경이 4년전 그때와 점점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철 주간한국부 차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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