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4일 얼굴에 생긴 4개의 검버섯 제거수술을 받았다. 원래 여름휴가인 8월초에 받으려던 수술이 늦어진 내력에는 ‘전시 대통령’ 의 숨가쁜 역정이 그대로 담겨있다.또 짬을 내지 못했던 부시가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은 한없이 계속될 것 같았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이 종결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사소한 수술마저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부시는 질풍노도처럼 ‘새로운 전쟁(New War)’에 처한 미국을 이끄느라 하루의 영일도 없었다. ‘3차 세계 대전의 발발인가’라는 당시 신문 제목이 말해주듯 개전 초기 미국의 상황은 불확실성이 가득했다. 그러나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답게 부시는 미 본토가 공격당하는 초유의 위기를 거쳐 취임초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지도자로 거듭났다.
사실 공직 경험이라고는 텍사스 주지사 경력밖에 없는 촌뜨기 대통령의 상반기까지 성적은 워싱턴포스트의 평가대로 잘해야 C학점이었다. 대선에서 민주당 앨 고어후보에게 총득표수에서는 뒤지고도 선거인단수에서 겨우 앞섰다는 불명예스런 꼬리표 때문에 취임초 정통성마저 의심받았다.
백전노장인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등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버티던 그가 처음 봉착한 시련은 4월1일 발생한 해군 EP-3정찰기의 중국 하이난(海南)섬 강제착륙 사건이었다. 외교 문외한인 부시는 노련한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등을 앞세워 기체와 승무원을 돌려받아 일약 ‘뚝심있는 대통령’으로 부상했다.
부시는 자신감을 얻은 듯 파죽지세로 자국이익 위주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밀어붙였다. 유럽연합(EU) 등 동맹국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토(京都)기후협약 탈퇴,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파기와 미사일방어(MD)체제 추진 등을 강행했다.
잘 나가던 부시는 5월말 제임스 제퍼즈 상원의원이 탈당하는 바람에 상원 다수당을 민주당에 내주는 어려움에 부딛쳤다. 그리고 7월 제노아 G8 정상회담 참석차 유럽을 방문한 부시는 ‘과거의 친구들’로부터 일방주의 외교, 강경보수 노선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들어야 했다.
9ㆍ11 테러는 이 처럼 세계가 부시의 리더십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할 때 터져 나왔다. 그리고 3개월 후. 미 언론들은 그를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비교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단결해 그를 지지했고, 국제적으로는 러시아까지 아우르는 반 테러 연합전선이 미국의 지도 하에 모여들었다. 취임 초 50%를 겨우 상회하던 국민지지율은 90%선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그의 앞날도 장미빛 일지는 미지수다. 종전과 함께 통치스타일에 대한 비난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데다 경기침체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달 부시가 입법부를 무시하는 등 ‘제왕적 대통령’티를 낸다고 비난했다.
부시는 또한 대 테러전을 확전해야 할 지, 종결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난제에 직면해 있다. 확전에 돌입할 경우 반 테러연합전선이 지속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한 상황이다. 반면 테러조직을 발본색원하지 못할 경우 내년 말 중간선거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의 장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게 워싱턴 정가의 분석이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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