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수지 김 사건’발생 당시 장세동(張世東ㆍ65) 전 안기부장이 윤태식(尹泰植ㆍ43)씨의 기자회견 보류 결정을 내렸다가 몇 시간 만에 강행지시를 내리는 등 주도적으로 사건을 은폐ㆍ조작한 사실이 확인됐다.또한 지난해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하자 고 엄익준(嚴翼俊) 당시 국정원 2차장의 지시를 받은 김승일(金承一) 전 국정원 대공수사국장과 이무영(李茂永) 전 경찰청장이 협의를 통해 수사를 중단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수지 김 살해사건’은폐의혹을 수사해 온 서울지검 외사부(박영렬ㆍ朴永烈 부장검사)는 19일 김 전 국장과 이 전 청장을 직권남용, 직무유기 및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그 동안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그러나 장씨 등 지난 87년 당시 안기부 및 외무부 관계자들은 공소시효가 완료돼 처벌하지 못했다.
검찰에 따르면 안기부는 87년 1월5일 윤씨가 싱가포르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 부인인 ‘여간첩’ 수지 김(본명 김옥분ㆍ金玉分ㆍ당시34세)에게 납북될 뻔 했다고 주장하자 다음날 장모 해외담당 부국장을 현지에 파견했다.
그러나 장 전 부국장으로부터 윤씨의 수상한 행적을 보고 받은 안기부는 1월7일 오후 9시 기자회견 보류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결정은 불과 몇 시간 뒤인 1월8일 오전 1시 장 전 부장의 ‘느닷없는’ 강행 지시로 뒤집혔다. 당시 유성환 의원의 국시논쟁과 건국대 사태 등으로 수세에 몰렸던 장 전 국장이 국면타개책으로 사건을 이용하려 했던 것.
이미 윤씨의 월북시도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이장춘(李長春) 당시 싱가포르 대사는 최광수(崔侊洙) 당시 외무부 장관의 훈령도 거부하며 기자회견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장 전 부국장은 태국 방콕으로 자리를 옮겨 윤씨의 기자회견을 연 뒤 1월9일 그와 함께 귀국했다.
1월10일 윤씨로부터 자신이 김씨를 죽인 사실을 실토받고 당황한 안기부 수사관들은 장 전 부장에게 진상을 보고했고 은폐지시를 받았다.
윤씨는 뜻밖에 “발설하면 큰일난다”는 ‘가벼운’ 협박으로 면죄부를 받은 뒤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행세하면서 14년을 무사히 보냈다. 물론 안기부는 그 뒤 수시로 전화나 출국금지 조치 등을 통해 그를 감시해왔다.
윤씨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한 지난해 초. 그 해 1월29일 경찰이 홍콩주재관의 보고에 따라 내사에 착수, 국정원에 87년 자료를 요청하자 엄 전 차장은 김 전 국장에게 “기존 방침대로 살인사건임을 밝히지 말고 보안을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국장은 이 지시에 따라 2월15일 이 전 청장을 찾아가 “수지 김 사건은 간첩조작 사건이며 진범은 윤씨인데 87년 안기부가 사실을 알고도 덮었다”며 협조를 부탁했다. “국정원의 방침은 무엇이냐”고 되물은 이 전 청장은 “사건을 계속 덮어두는 것”이라는 답변을 얻은 뒤 김병준(金炳俊) 당시 외사관리관에게 “내사를 중단하고 기록을 국정원에 넘기라”고 지시했다.
이미 2월12일과 13일 윤씨를 소환조사하는 등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가던 경찰은 총수의 ‘한 마디’ 지시에 17일 사건기록을 국정원에 넘기고 수사를 중단했다.
박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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