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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통령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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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대통령의 아들

입력
2001.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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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아들로 살아간다는 것은 '죄'다.굳이 외국의 사례를 들 것도 없이 아주 잘못된 일이지만 한국의 정치문화는 어쩔 수 없이 그렇다. 그게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임기를 1년2개월 가량 남겨둔 지금, 정국은 또다시 대통령의 아들들을 놓고 시끄러워지고 있다.

전두환(全斗煥)ㆍ노태우(盧泰愚) 전 대통령의 경우는 아들들이 대학생이었거나 나이가 어려서였던지 아버지의 재임 중이나 퇴임 후에도 별 말이 없었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그 아들이 가끔 마약복용 등으로 신문지상에 오르내렸으나 누구나 개인적 잘못으로만 여겼다.

세월을 훨씬 더 거슬러가면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李康石)씨가 세상을 시끄럽게 한 적은 있었지만 워낙 오래된 옛날 일이다.

역시 대통령의 아들로 세인의 기억 속에 깊게 각인된 사람은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金鉉哲)씨다.

1999년 1월 초 청와대를 출입하다가 워싱턴특파원으로 발령이 난 나는 인사차 문종수(文鐘洙) 민정수석의 방을 들렀다.

검찰을 출입하던 시절부터 알던 사이라 인사만 하고 그냥 일어나려다 "앞으로 김현철씨 때문에 머리 아프겠다"고 한마디 꺼냈다.

문수석은 "무슨 비리라도 아는 게 있느냐"고 물었고 그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의 아들 주변에는 온갖 사람이 꼬인다. 주로 이해관계 때문에 그를 만나려고 백방으로 노력한다. 사업상의 경쟁자에 대해서는 '현철이에게 줄 대고 있다'고 말하고 또 자기가 하려던 사업이 딴 사람에게 넘어가면 '현철이가 해줬다'고 소문내고 다닌다. 정말 비리가 있는지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반드시 이런 말들은 의혹으로 되어 떠오르고, 그러면 검찰은 진상규명 차원에서라도 조사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며칠 안가 한보가 부도나고 그리고 조금 있다가 소위 '한보비리'를 시작으로 해서 김현철씨에 얽힌 온갖 의혹들이 터져나왔다.

결국 그는 검찰에 구속되었지만 '한보비리'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고교 선배들로부터 활동자금을 받아왔던 게 문제가 되었다.

정말 한보와 관련된 비리가 있었는데도 검찰이 못 밝힌 것인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정치참모 역할을 했고 자신도 총선출마를 생각했던 김현철씨로는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게 됐다.

그래서인지 최근 모 월간지에 그는 "나는 희생양"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5년이 조금 안되는 시점에서 김홍일(金弘一) 김홍업(金弘業)씨의 얘기가 불거지고 있다. '진승현 게이트'의 로비스트로 떠오른 정성홍(丁聖弘) 전 국정원 과장이 김홍일씨와 접촉하려고 시도했고 또 다른 로비스트인 최택곤(崔澤坤)씨는 김홍업씨에게 구명 운동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까지 밝혀진 대로라면 이들 형제는 '로비의 대상'이었을 뿐이지 범죄에 가담했다는 징후는 없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들도 인정하듯 '진 게이트'로 문제가 돼 구속된 사람들이 모두 오래 전부터 홍일ㆍ홍업씨 형제와 아는 사이다.

그리고 '진 게이트'와 관련돼 나돌고 있는 얘기들은 점차 이들 형제 주변으로 향하고 있다.

또 오래 전부터 '누구는 누구줄을 잡아 자리를 얻었다'는 식의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5년 전처럼 언제 '시중의 소문'이 의혹으로 불거질지 모른다.

특히 야당쪽보다도 여권의 대선후보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상황은 더욱 좋지 않게 변한다.

그때가 되면 여당도 표를 의식, 더 이상 대통령의 아들을 두둔하지 않고 '의혹을 밝히라'는 쪽에 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검찰도 그냥 있을 수 없고, 그러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정말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의 아들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신재민 사회부장

jm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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